신문의 미래는 어떠할까. 그게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닐거다. 예상은 깨지라고 있는 거지만, 내 예측으로 신문은 모바일 전자기기와 클라우드 안에 자리를 잡을 것 같다. 현재의 신문지 크기지만 가볍고 접을 수 있는 태블렛 기기를 통해 새로운 기사가 전해진다. 정기구독 요청이나 보증금을 내면 기계를 받을 수 있다. 종이신문 또한 사라지지 않고 공존할 것이다.
회화의 미래는 어떠할까. 회화의 종말 같은 언술은 절반은 팩트며, 나머지 절반은 엄살이다. 일단 우리나라에서 잘 나가는 미술잡지들을 펼쳐놓고 기사가 다루는 내용을 살펴보면 여전히 회화의 빈도수가 크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미술이라고 생각하는 전통적인 그림그리기는 이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믿기 싫으면 부정해도 된다. 예술은 주관적인 자기 신념이 있어야 하니까. 하지만 회화는 단순히 똑같이 그리는 시대를 지나서 여러 시도를 통해 화가 개인의 독자성을 증명하는 것으로 예술성이 매겨진다.
정경상은 주로 신문지에 그림을 그려왔다. 이는 신문에 대한 모독일까 찬미일까, 알쏭달쏭하다. 그는 신문지 위에 도시 일상을 그린다. 작가는 그림 도구를 챙겨서 시내로 나간다. 그는 길거리 서점 버스 전철을 스쳐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빨리 잡아낸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심의 사람이 아니라 산 언덕배기에 자란 들풀을 그렸다. 신문지도 아니다. 이 전시는 말하자면 작가에겐 일탈이다. 하지만 그의 필선은 사람을 그리건 화초를 그리건 차이가 없다. 그림을 완성하는 시간만큼 전시 관객들이 머무는 시선도 짧다. 모든 예술이 영상의 지배를 받는 이 시대에, (예술)영화관에서 벌어지는 회화는 한편으로 역설이다.
지금까지 나는 이 지면에 실리는 글을 굉장히 빨리 썼다. 짧게는 10분, 길어도 3,40분이었을 거다. 이 글을 쓰는데 10분이란 시간이 필요했던 것처럼, 정경상의 전시를 보는 데 걸리는 시간도 10분이다. 10분 안에 이루어지는 일은 많다. 내가 투자한 10분이 예컨대 학생들과 노동자들에게 주어지는 10분의 휴식 시간만큼 중요하지는 않다. 정경상이란 화가는 속도감 있게 뒤쳐진 사람이다. 짧은 순간을 포착해 온 이 작가는 재빠른 손놀림과는 달리 세상을 느리게 산다. 핸드폰이나 이메일 계정 하나 없이 오직 그림 그 자체로써 자신을 알려온 그가 지금은 뒤쳐져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와는 상관없이, 이 도시의 속도를 틀어쥐는 그의 필력은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것이다.
윤규홍 (갤러리분도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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