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 대한 정의와 미술행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현대미술은 작가의 연대기적 설명과 작품 경향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으면 좀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개념미술'이니 '기하추상회화'의 경우, 작품 재질이나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 활동으로 인해 더더욱 그러하다.
대구 태생으로 계명대 미술대학 회화과를 나와 기하추상회화 작가로 알려진 이교준(64)도 예외는 아니다.
1960년대까지 한국 미술계는 서구 미술을 수용하는데 중점을 뒀고 구체적 형상에 대한 재현을 탈피해 행위성을 강조하며 두터운 질료감을 표현한 소위 앵포르멜(Informel'비정형적)로 지칭되는 추상미술이 지배적이었다. 이에 따라 대지미술, 환경미술, 설치미술 등 개념성을 강조한 작품들이 발표되면서 우리나라 현대미술에 맞는 담론이 펼쳐져 갔다.
새로운 미술에 대한 열망과 개념미술을 적극 의식한 이교준은 1979년 대구현대미술제를 기점으로 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실험적인 설치미술을 전개하며 주요 전시에 참여해 왔다. 이어 1990년대 초부터 평면작업에 석판화, 목탄, 아크릴, 수채 등 다양한 재료를 결합하고 이를 분할하는 시도를 했고 90년대 후반부터는 플렉스글래스와 알루미늄, 납판과 같은 금속재료와 캔버스를 이용한 기하학적 작업을 통해 자신의 회화적 독법(讀法)을 이어오고 있다.
이교준의 작업은 크게 3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첫 번째가 신체작업이다. 작가는 기존 미술의 방식으로 충족되지 않는 지점을 신체와 일상의 행위를 작품의 주요소나 대상으로 삼았다. 신체 또는 행위를 나타내는 언어를 목록화해 사진이나 영상에 담거나 때로 녹음된 음성으로 발성하기도 한다. 신체작업은 필연적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작업과정이 드러나고 주체와 객체가 재설정되는 상황을 맞이한다.
두 번째는 사진작업이다. 신체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신체와 행위를 기록하기 위해 사진이 이용됐고 이때 프레임의 바깥에 여백을 남겨 인화하는 방식은 대상이 놓인 장소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흐트러뜨렸다.
세 번째는 텍스트 작업으로 언어를 통해 인식의 영역과 지각의 영역을 분리하고 이들 사이 상호작용을 실험했다. 'BLACK' 'WHITE' 등 텍스트를 문자와 의미를 일치하게 하거나 반대되게 하여 인식과 지각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차이를 일깨웠다.
이교준은 또 2000년대부터 작업을 캔버스로 옮겨와 최소한의 형태와 색채만으로 화면을 분할하는 시도를 했다. 'Void' 연작은 이것의 결과로 면으로 구성된 층과 선으로 구성된 층이 겹쳐지면서 각 층마다 공간을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면과 선 그 자체가 독립된 요소로 화면 안에서 균일하게 공간성을 보여주는 그의 작품은 평면이라는 프레임 자체를 새롭게 인식시키고자 하는 듯하다. 이 같은 그의 사유는 화업(畫業) 40여년 간의 시간을 건너면서 회화의 형식을 통해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초기 작업들과 현재의 평면 작업이 사뭇 다른 형식적 시도를 하고 있는 것 같아도 개념미술가로 이교준의 통시적 작업은 동일한 개념의 결과에 닿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따라 이교준은 1970년대~1980년대 집중한 개념적 설치와 사진작업을 재구성하고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기하추상회화를 모아 개인전 'Untitled'전을 열고 있다.
피비갤러리(서울시 종로구 북촌로 125-6, 1층)에서 4월 20일(토)까지. 문의 02)6263-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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