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문환의 유물로 읽는 동서양 생활문화] 금관은 왕이 쓴 것일까? 유라시아 금관문화

김문환 세명대 교수
김문환 세명대 교수
필리포스2세 금관
필리포스2세 금관

"산 위에 저게 뭐꼬?" 고령군청에서 동북쪽 지산동 대가야 박물관 뒤 해발 311m 주산(主山) 능선의 거대 봉분들을 보고 1560년경 합천 출신 유학자 남명 조식이 남긴 말이다. 유라시아 대륙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능선 위 고분군의 32호 묘에서 1978년 출토된 금동관이 지난해 12월 보물로 지정됐다. 이 금동관은 누가 쓰던 것일까? 유라시아 금관문화를 살펴본다.

◆황남대총 왕비릉 금관

국립중앙박물관 신라전시실에서 압도적인 위용을 뽐내는 경주 황남대총 금관(국보 191호)은 높이 27.5㎝, 무게 1㎏이니 소고기 두 근 가깝다. 관의 테두리, 즉 원형 대륜(臺輪) 위로 조형물을 붙였는데 2종류다. 하나는 얼핏 한자 '출'(出) 자에 '산'(山) 자가 붙은 형태의 나뭇가지다. 이런 나뭇가지 3개 사이로 사슴뿔 장식 2개를 세웠다. 신라의 왕이 쓰던 것일까? 황남대총 금관은 왕의 능인 남분이 아니라 왕비의 능인 북분에서 출토됐다.

◆신라 금관 6개, 가야금관 2개

1921년 금관총, 1924년 금령총, 1926년 서봉총, 1970년대 도굴품 교동금관, 1973년 황남대총과 천마총까지 신라금관은 6개다. 이 가운데 금령총과 교동금관은 지름이 16.5㎝와 14㎝로 작아 성인이 쓸 수 없다. 소년 무덤이라면 왕이 아니고, 왕의 무덤이라면 머리에 쓰지 않는 부장품이란 얘기다. 가야금관은 국립도쿄박물관, 용인 에버랜드 리움박물관에 전시 중인 2개다. 고구려는 만주 집안박물관에 일부 금관 유물이 전시된 점으로 미뤄 금관도 만들었으나, 모자에 새 깃털 등의 금 장식을 붙이는 소골 풍습이 주를 이뤘다. 백제는 금관을 만들지 않고, 고구려의 관모 금장식 문화를 받아들였다. 무령왕릉에서 확인된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가야금동관 같은 금동관은 각지에서 출토된다. 호족들도 금동관을 부장품으로 묻었음을 말해준다.

◆기마민족의 여성용 사슴금관

북경 천안문광장 국가박물관에는 내몽골 포두에서 출토한 4, 5세기 선비족의 머리 금장식을 전시 중이다. 사슴뿔과 나뭇가지 형태다. 호화호특 내몽골 박물원에는 B.C 3세기~1세기 훈(흉노)족의 찬란한 금관이 탐방객을 맞는다.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이식쿠르간의 B.C 4~B.C 3세기 사카(스키타이 일파)족 관모 금장식도 사슴뿔이다, 아프가니스탄 틸리야 테페의 1, 2세기 월지족 쿠샨제국 금관은 20대 초반 여성 무덤에서 나왔다. 기마민족의 원류 스키타이 금관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라브라박물관에서 만난다. 뛰어난 세공기술을 자랑하는 B.C 4세기 스키타이 금관 모티프는 여신과 사슴이다. 주로 여인 무덤에서 출토된다. 스키타이가 여신을 숭배한다는 B.C 5세기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의 기록과 일치한다.

◆정복왕 알렉산더도 금관을 썼을까?

그리스 북부의 과거 마케도니아 수도였던 베르기나, 필리포스 2세 무덤에서 1977년 금참나무 잎 313장으로 만든 금관(Wreath사진)이 출토됐다. 알렉산더의 부왕이던 필리포스 2세가 B.C 336년 암살됐으니 소유주가 밝혀진 가장 오래된 금관이다. 왕비금관도 같이 출토됐다. 알렉산더의 유복자로 태어난 알렉산더 4세 추정 인물 금관도 1978년 출토됐으니 알렉산더 무덤에도 금관을 넣었을 게 틀림없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그의 무덤은 로마시대 멸실돼 아쉽게도 확인할 길은 없다. B.C 4세기~B.C 2세기 헬레니즘 문명권에서는 참나무, 올리브, 도금양 소재의 화려한 초화형 금관이 여성 무덤에서 다수 출토된다. 터키 앙카라 아나톨리아문명박물관에 전시 중인 알라자회윅 출토 B.C 2500년경 금관들은 금관의 유구한 역사를 말해준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