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이란 갑을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가 상대방의 인권을 무시하고 오만무례하게 행동하거나 제멋대로 구는 짓을 말한다. 정·관·재계에 범람하는 갑질은 이미 조롱의 대상으로 회자되고 있지만 문화·예술·체육계의 갑질도 만만찮다. 잦은 갑질이 미투로 확산되고 마치 태풍이 할퀴고 간 자국처럼 깊은 상처만 남아 있다.
사제 간, 선후배 간의 규범이 엄격해 진즉에 드러나지 않았으나 피해자들이 뒤늦게 문제를 제기하는 바람에 한바탕 홍역을 치른 것이다. 이른바 도제식(徒弟式) 트레이닝 탓이다. 하지만 건전한 사고를 가진 지도자들은 그런 트레이닝이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필요악'이라고 주장한다.
연극·영화나 뮤지컬은 출연진의 연기가 작품의 흐름과 관객의 호응도를 좌우한다. 따라서 한 사람의 뛰어난 배우를 발굴하기 위해 연출자는 피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체육계 역시 국가대표 선수를 양성하고 세계대회의 메달권에 도전하기 위해 지도자와 선수가 동심일체가 돼 혹독한 훈련을 쌓아가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한다.
미술계는 어떤가? 한때 작가 지망생들이 화단의 최고 선배인 원로화가나 중견작가들에게 사사(師事)하는 과정을 원칙으로 삼았다. 하여 평생을 화업(畵業)에 천착해온 선배들의 조수로 들어가 잔심부름과 궂은 일부터 자청하며 화풍(畵風)이나 기법(技法)을 어깨 너머로 배우는 수련을 거쳐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예술이란 어느 분야든 올곧은 장인(匠人)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평생을 걸고 피나는 수련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다 보면 스승이나 선배들의 광기에 가까운 갑질을 당하기 일쑤이고 당장이라도 내칠 듯 쏟아지는 폭언도 약(藥)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제자는 그런 간난(艱難)과 뼈를 깎는 수련을 거쳐야만 비로소 한 사람의 작가로서 자기 위치에 떳떳하게 오를 수 있다.
최고의 선배가 최고의 제자를 양성하는 필연적인 '갑을' 관계다. 쓰디쓴 맛을 본 다음에야 비로소 단맛을 알게 된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사자성어가 새삼 생각나는 이유다.
이미애 대구미술협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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