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합의 보지 못하고 끝났지만
사전조율 없는 회담의 위험성 각인
북핵문제 올바르게 이해한 트럼프
제대로 된 북핵협상 시작할 모멘텀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아무런 합의를 보지 못하고 끝났다. 하노이 정상회담이 소위 빅딜로 끝날지, 스몰딜로 끝날지 의견이 분분하였지만, 이렇게 아무런 결과 없이 끝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다. 미·북 합의를 계기로 대북 경협을 본격화해보려던 우리 정부로서는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포기와 영변 핵시설 동결 정도의 적당한 수준에서 합의를 볼까 걱정하던 사람들은 안도의 숨을 내쉰다. "잘못된 합의보다는 무합의가 낫다"(No deal is better than bad deal)는 것이다.
그러나 금번 하노이 정상회담을 마냥 실패라고 할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모두에게 사전 조율 없는 정상회담의 위험성을 잘 깨우쳐 주었다.
외교가에서 흔히 하는 말로 "실패하는 정상회담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정상회담은 협상하는 자리라기보다 외교관과 전문가들이 이미 협상을 완료한 사항을 확인, 공표하는 자리라는 의미이다. 이번 회담에서는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특별대표가 마지막까지 실무협상을 하고, '정상회담 합의문 초안'까지 마련하는 등 싱가포르 회담 때보다는 톱다운 방식의 문제점을 상당히 보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무협상을 제대로 가동하기도 전에 정상회담 날짜까지 미리 잡아 놓고 시작한 것은 문제가 있다.
다음으로, 하노이 정상회담은 양 지도자에게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김정은은 1994년 제네바 합의와 2005년 9·19 공동성명 때 팔아먹은 적이 있는 '영변'이라는 말(馬)을 세 번째로 팔아먹으려 했다.
김정은은 대가로 유엔 제재 '일부 해제'를 요구했다. '영변'이라는 말이 안보리 제재 결의 11건 중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채택된 5건의 해제 값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영변 핵시설의 영구폐기 정도로는 불충분하다며, 북한의 제안을 걷어찼다.
이는 트럼프가 북핵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은 2005년의 9·19 공동성명과 2007년의 이행합의서를 통하여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을 포기할 것"과 "모든 핵프로그램에 대한 완전한 신고", 그리고 "검증"까지 약속한 바 있다.
그리고 이행 초기 조치로 "재처리시설을 포함한 영변 핵시설 폐쇄·봉인"을 약속하였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영변 핵시설은 북한 핵시설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하노이에서 트럼프는 '영변+알파'를 요구했다. 즉, 영변 이외 숨겨둔 우라늄 농축시설 폐기와 미사일, 탄두 등이 포함된 신고 리스트 제출을 요구한 것이다.
트럼프는 또한 북한이 "인민생활에 영향을 준다"며 해제 요구한 안보리 결의 5건이 사실상 북한의 기름과 돈줄을 옥죄는 가장 강력한 제재 수단이라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 트럼프는 영변에 있는 낡은 핵시설 해체와 가장 실효성 있는 대북 제재 해제를 맞바꾸자는 김정은의 제안을 거부한 것이다.
하노이 회담은 이제 제대로 된 북핵 협상을 개시할 모멘텀이 될 수도 있다. 이번 회담을 통하여 미·북 양측은 상대방이 생각하는 거래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확인했다. 또한, 대북 협상의 가장 유용한 지렛대가 북한의 기름과 돈줄을 막아버린 5개 제재 결의임을 재확인한 것도 성과라면 성과다.
2017년 말 최대의 압박을 통한 극적인 북핵 해결 기회를 놓친 것은 아쉽지만, 이번 회담이 10여 년간 중단되었던 제대로 된 북핵 협상을 되살릴 모멘텀이 될 수도 있다.
종종 실패한 정상회담으로 치부되는 1986년의 레이건-고르바초프 간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이 이후 실무협상을 거쳐 이듬해인 1987년 중거리 핵전력(INF) 조약을 탄생시킨 계기가 되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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