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개봉한 영화 '말모이'는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일제와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인 조선어학회의 이야기를 담았다. 우리말과 글이 금지된 시대였지만, 조선어학회가 온 마음으로 우리말을 모아 말모이(사전)까지 만들어 낸 것은 국어학자로서 당연한 민족사적 책무였다고 치자. 과학계에서도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조선박물연구회 사람들이었다. 일제의 우리말 탄압으로 조선어학회 회원들이 옥고를 치를 당시에 이들은 우리 땅에서 새로 발견한 동식물에 우리말을 붙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괴불주머니' '애기똥풀' '바람꽃' '등칡' 등의 이름이 그렇게 태어났다. 일본식 이름 '야인과'(野人瓜)를 '멀꿀'로, 중국식 한자명인 '전추라'(剪秋羅)를 '동자꽃'으로 바꾼 것도 이들이다. '각시멧노랑나비' '떠들썩팔랑나비'라는 이름도 이때 생겼다.
본지 2월 16일 자 '주말 돋보기' 코너에서는 '동성로 점령한 일어 간판'이란 내용의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대구 중심가의 음식점 간판과 요리 명칭에 일본식 외래어가 범람하고 있어 우리 언어를 잠식하고 우리 언어 습관을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어디 일본어뿐인가. 영어는 물론 프랑스어와 스페인어 계열까지 국적 불명의 외래어가 횡행하는 이 땅의 '짬뽕 언어문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요즘 같은 국제화시대에 상당수 외래어가 혼용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조류라고 하자. 그런데 억지로 서양식 상호를 붙여야 글로벌 기업이 되고, 따라 읽기조차 어려운 외래어를 달아야 아파트가 팔리는 세태가 되었다. 구태여 서양말을 써야 품격 있는 지식인 대접을 받는 나라가 되었다.
방송과 언론조차 그것을 자성하고 개선하기는커녕 되레 혼탁을 부채질하고 있다. 우리말과 글에는 우리의 얼과 넋이 배어 있다. 선인들이 혼신으로 지키고 살려온 말과 글을 잘 가꾸고 다듬어 나가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그런데 온갖 외래어에 오염되어 표류하고 있는 우리말과 글의 혼탁하고 혼란한 현주소를 방관하고 조장하면서 3·1운동 정신을 운운할 자격이나 있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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