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4월의 봄 포항여성회관에서 열린 '인구증가 억제 대책 촉진대회' 알림 플래카드 사진이다. 플래카드가 내걸린 곳은 포항시내 한 금융회사 점포다. 포항시청이 갖고 있는 옛 자료 사진 중 하나다.
눈길을 끄는 건 '인구증가 억제 대책 촉진대회'라는 행사명이다. 1983년 우리 정부의 현실 인식이 묻어난다. 국내 인구 4천만 명을 넘어선 1983년은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는 슬로건이 먹혔다.
하긴 정부가 밀어붙이면 뭐든 통했던 때였다. 하나만 낳아 잘 키우자고 국가가 장려하기까지 했다. 전국 주요 도시에 인구시계탑까지 세워 인구가 폭증하고 있다며 겁을 줬다. 1980년대 보건직 공무원으로 근무했던 전쌍봉(83·여) 씨는 '대구의료여성'(대구여성가족재단 엮음)이라는 책에서 당시 풍경을 이렇게 전했다.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면 말로 설명을 했다. 미국 같은 데 가보면 아이를 적게 낳고 잘살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너무 아이를 많이 낳아서 못 산다. 우리도 외국 사람하고 같은 수준으로 살자고 했지."
아이를 적게 낳는 것은 국가 시책에 부응하는 애국이었다. 대표적 여성교육 기관인 여성회관에서 '인구증가 억제 대책 촉진대회'를 연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육아 인프라라고 부르기 민망한 당시 상황을 감안하면 여성의 사회 활동에 출산은 '올스톱'을 의미했다. 모든 활동을 멈춰야 했다.
"벌어봐야 얼마나 더 번다고 일하러 가느냐는 말을 듣고서도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시댁에 딸아이를 맡기고 아침마다 직장으로 향했다. 그 딸아이가 이제 나와 같은 입장이 됐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서글프다."
최근 퇴직한 김경자(65·여) 씨의 말이 뼈아프다. 아이 많이 낳자는 정부는 지난해에도 저출산 관련 예산으로 20조원이 넘는 돈을 들였다. 그러나 우리나라 가임기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는 0.98명이다. 전 세계에서 전무한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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