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만세운동의 현장, 지금은] 산골 장터에 울려퍼진 그날의 함성. 울진 만세운동

1919년 4월 매화·흥부장터서 만세운동 퍼져
주동자 투옥. 모진 고초 속에도 밤새도록 만세 소리 봇물

울진군 주민들은 1919년 4월 13일 울진 부구장터(지금의 울진군 북면사무소)에서 행해진 만세운동을 기념하며 매년 만세행진을 펼치고 있다. 울진군 제공.
울진군 주민들은 1919년 4월 13일 울진 부구장터(지금의 울진군 북면사무소)에서 행해진 만세운동을 기념하며 매년 만세행진을 펼치고 있다. 울진군 제공.

1919년 4월 11일. 울진군 매화면에서는 열흘에 한번 장터가 서는 날이다.

장터 바로 앞 일본 헌병대 사무실에는 말을 타고 칼을 빗겨찬 일본군들이 삼엄한 경비를 펼치고 있었다.

전날 만세운동을 준비하던 지역 젊은이 6명이 정보가 새나가며 붙잡힌 참이었다.

그러나 다소 늦어지긴 했어도 독립을 위한 민초들의 성원은 끊기지 않았다.

이날 오후 3시쯤 장사치들과 주민들이 한데 섞여 '대한독립기'라고 쓰인 작은 태극기를 일제히 꺼내들었다.

100여 명이 모인 장터는 독립만세를 외치는 포효로 가득 찼다.

한번 일제 식민지의 울분을 토해낸 민초들은 다음날인 12일에도 울진 장터에서 만세를 외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전날 사건으로 도합 11명이 끌려가 고문을 당하자 기세가 한풀 꺾였다.

어쩔 수 없이 하루를 건너뛰고 13일 부구장터(지금의 울진군 북면사무소 인근)에서 다시 만세운동이 계획됐다.

당시 부구장은 울진, 영덕은 물론 강원 삼척과 강릉에서도 장사치가 모이는 울진지역 최대의 장날이다.

이번에는 일본 헌병들이 단단히 준비를 갖췄다. 주동자들 4명이 태극기를 나누며 만세를 외치자 곳곳에 대기하던 헌병들은 즉각 이들을 체포하고 장사치와 군중들을 해산시켰다.

잠시 피신해있던 사람들은 오후 8시쯤 만세를 부르며 다시 시장 입구로 모여들었고 만세소리는 이튿날까지 울진 전역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일본 헌병대는 당시 부구 만세운동의 참여자가 50명이라고 기술했으나, 지역 사서에는 마을 곳곳에서 500여 명이 태극기를 흔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옛 부구장터 자리에 건립된 흥부만세공원. 1919년 4월 13일 울려퍼졌던 울진 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2012년 11월 지어졌다. 울진군 제공
옛 부구장터 자리에 건립된 흥부만세공원. 1919년 4월 13일 울려퍼졌던 울진 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2012년 11월 지어졌다. 울진군 제공

울진의 만세운동은 서울에서 펼쳐진 3·1운동에 비해 한달 여나 늦게 진행됐다.

하지만 울진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개최한 운동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울진은 이들의 의거를 기념하기 위해 가장 크게 만세운동이 벌어졌던 옛 부구장터에 지난 2012년 11월 흥부만세공원을 조성했다.

또, 독립정신보존위원회를 구성해 매년 4월 13일이면 북면 거리를 돌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기념식을 개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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