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지만 2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안희정 사건에서 법원이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한 후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용어가 가끔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다. 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에서 '성'은 영어의 'sex'가 아니라 'gender'이다. sex는 생물학적, 신체적 기준으로 사람을 나눈 것이고 gender는 특정 사회가 바람직하게 여기는 사회·경제적 역할에 따라 구분한 것이다.
성인지 감수성은 '사회·경제적 활동을 할 때 이성(異性)이 지닌 약점, 어려움, 정신적 및 육체적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마음의 준비 상태'를 의미한다. '이것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이것을 갖추고 상대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고, 상대에게 말과 행동을 해야 함을 뜻한다. 이론적으로 이것은 남성이 여성을 상대로 가져야 할 감수성일 뿐만 아니라 여성이 남성을 상대로도 지녀야 할 감수성이다. 하지만 이것은 약한 상대에 대한 상대적으로 강한 쪽의 이해와 공감의 문제이기 때문에 남성 중심인 현실에서는 남성이 갖춰야 할 감수성으로 이해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는 남성 중심이었으며 여성은 사회·경제적으로 차별을 받아 왔다. 문화권에 따라 다르지만 심한 경우엔 아직도 여성의 사회 활동이 전면 금지되거나 부분적으로만 허용되는 지역이 있다. 그리고 법적으로는 전면 허용된다고 할지라도 명목뿐이고 여성의 사회·경제적 활동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은 우리들의 인식, 언어 습관, 교육 과정, 교육 제도, 취업, 직장 및 가정 내의 역할, 그리고 종교 및 정치 제도 등 사회 각 분야에 똬리를 틀고 있다.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큰 인기를 끌었고 최근엔 일본에서도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 작품은 김지영의 기억이 시작될 무렵부터 30대 중반까지의 평범한 일상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용어를 직접 쓰진 않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여성인 김지영이 사회·경제적으로 불리한 여건에 에워싸여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출생 시의 남녀 구별부터 초, 중, 고, 대학 생활 및 취업 과정에서의 차별, 경력단절과 독박육아까지 그녀가 겪은 성차별이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안희정의 1심 재판부는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다시 말해 피해를 당한 후에도 평소처럼 행동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다움에 정답이 없으므로 '피해자는 이러해야 한다'는 것도 남성중심사회가 만든 프레임이다. 피해자가 스스로 최후진술서에서 밝혔듯이 막강하게 불의한 권력 앞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매장당할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처신하는 것 외에 무엇을 더 어쩌란 말인가?
할머니 세대의 짐을 어머니 세대가, 어머니 세대의 차별을 누이가 이었는데, 딸과 손녀들에게도 똑같이 물려줄 것인가?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에서는 이미 2004년 200쪽이 넘는 '성인지 감수성 교육 매뉴얼'을 발행하였다. 교육부, 여성가족부, 각급 교육기관 및 직장의 인사 관리팀은 성 평등과 성인지 감수성 교육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모든 이를 위한 교양 및 인성교육이고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이로운 교육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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