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 샤갈이나 피카소, 마티스 등은 장수하며 생전에 명성까지 누린 대표적인 화가들이다. 긴 생애만큼 남긴 작품의 수도 많고 양식상의 변화도 풍부한 작가들이다. 국내에서는 김병기, 이준 화백 등 여러분들이 백수를 누리며 아직도 캔버스와 씨름한다는 소식이 최근 지상에 소개되곤 했다. 노년까지 붓을 놓지 않은 정신을 보면 다들 놀랍지만 간혹 매너리즘에 빠진 그림으로 젊은 시절의 창의성이 빛바래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도 없지는 않다. 오래도록 화필을 들고 있는 노익장들이 들을 수 있는 흔한 기우 중 하나다.
올해로 아흔 여덟을 맞이하신 지역의 전선택 화백 회고전을 보고 화가란 직업에 대해 새삼 각별한 생각을 해볼 계기가 되었다. 가끔 문안차 선생을 뵈러 가면 그림 주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전시 출품 요청이 오는 것도 아닌데 늘 새 그림을 그려 놓으시고 물으신다. 이것도 작품이 되겠는가 한번 보라시면서. 일생을 그림 한길로 지내신 분이 아직도 당신 작품에 확신이 없으신지 대답을 듣고 싶어 하시니. 과연 창작이라는 것이 얼마나 끝이 없는 작업인가 싶다.
사실 젊은 시절 그림에 비해 밀도감이 떨어지는 듯 보이기도 해 내심으론 이제 그만 쉬셔도 되지 않나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만년에도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시는 이유는 당신의 직업이 화가이어서 힘이 닿는 한 죽는 순간까지 붓을 놓지 않겠다는 사명감 같은 것 때문일 게다. 그저 소일거리라고 하시지만 화가는 그림을 그릴 때 오로지 살아 있는 존재로서의 의의를 확인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선생의 작품세계에서 인생과 자연에 대한 관조를 느낄 때가 있다. 언제나 현실에서 모티프를 구했고 그런 까닭에 회화적 관심의 주 대상은 늘 생활의 표현이었다. 세상과의 대화와 사유의 수단이었던 셈이다. 주위 사물에 관심의 눈길을 주고 거기서 듣는 반응이야말로 그림을 그리는 즐거움이자 지치지 않을 창작의욕의 바탕이 되어 오늘날까지 작가적 삶을 지탱해 이끌어 온 것이리라.
천진한 장식 같은 그림 앞에서는 젊은 시절과는 사뭇 다른 자유를 보다가 간혹 덧없음의 느낌이 드는 근작들 앞에서는 노경에 이른 원로의 고독한 독백을 듣는 듯도 하다. 그래도 화가에게는 생의 전체를 한눈에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전시라는 기회가 있어 좋다. 지난 2010년에도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한차례 작은 회고전이 있었지만 마침 대구미술관에서 작품세계 전모를 그것도 선생의 생전에 보여주게 된 점은 여간 반길 일이 아니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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