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불수능(난이도가 높은 수능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장병이 있었다. 당시 김형태 일병은 급양병(공군의 취사병) 임무를 수행하며 틈틈이 인터넷 강의로 공부해 놀라운 성적을 얻었다. 군대 내 PC방 격인 사이버지식정보방(이하 사지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는 4월, 지난 2006년 병영문화 개선 방안으로 인터넷이 개방된 이래 장병들 생활에 가장 큰 변화가 생길 예정이다. 사병들도 부대 내에서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병영문화를 위한 혁신이란 국방부의 설명과 군 기강 해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공존하는 가운데 지난 8일 휴대폰 사용을 시범 운영하고 있는 50사단 북구대대를 찾아 장병들을 만나 보았다.

◆부대 내에서는
▶장병들
이원호 일병은 국회 보좌관이 되는 것이 목표다. 사회에서는 비슷한 목표를 가진 친구들과 만나 정보를 공유했지만 입대를 하면서 자연스레 연락이 끊어졌다. 최근 이 일병은 함께 국회 보좌직 정보를 공유하던 채팅방에 다시 합류했다. 군인이 채팅방에 들어와 대화에 참여하니까 친구들도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일병은 "취업 정보는 흐름을 파악하는 게 중요한데 그동안 차단되어 있어 갑갑했다. 군인 휴대폰 사용이 언젠가 돌아갈 사회와의 끈을 놓지 않는 점에서도 좋지만 새로운 제도가 군인에게 자율성을 보장해 주어 한 인격체로 존중한다는 느낌에 감사하다."라고 했다. 이 일병은 최근 작전사령부에서 주관하는 프레젠테이션 대회에 참가했는데, Youtube 채널에서 여러 강의를 보면서 준비한 결과 좋은 성적을 얻었다.
정지현 상병은 공대 진학을 목표로 최근 공부를 시작했다. 전역 이후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최근 휴대폰을 사용하면서 준비기간이 앞당겨졌다. 개인 정비시간에는 인터넷 강의도 보고 진학하고 싶은 학과 관련 정보도 찾아보는 중이다. 정 상병의 올해 목표는 진학하고 싶은 학교에 필요한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다.
대구 달서구에 사는 이 모씨는 최근 달라진 병영 생활을 새삼 실감한다. 수능 준비를 하던 아들이 입대를 하면서 공부와 단절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부대 내에도 충분히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복무기간 중에 수능시험 만점을 받은 병사의 소식이 알려지면서 이 씨의 아들은 더욱 결의를 다졌다. 이 씨는 "심각한 구직란 속에 공부하는 장병이 부쩍 늘어 사지방은 인터넷 강의를 듣는 사람으로 만원이라고 합니다. 아들도 눈치보면서 컴퓨터 쓰다가 최근엔 개인 전화로 인터넷 강의을 시청하며 공부하니까 시간 분배를 하기도 좋다고 합디다"라고 했다.
평소 체력 단련을 즐기는 박민철 상병은 최신 음악을 틀어놓고 Youtube 속 동작으로 운동한다. 박 상병은 "예전 체력단련실에는 거친 숨소리와 삐걱거리는 기구 소리만 울려 퍼졌다. 요즘에는 운동을 하면서 음악을 듣기도 하고, 동영상이나 SNS로 배우는 다양한 운동법을 따라할 수 있어 체력단련실 분위기가 더욱 좋아졌다"고 했다.
▶간부들
최민호 중대장은 사병생활을 거쳐 현재는 직업 군인으로 복무 중이다. 사병들의 일과나 이후 생활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휴대폰 사용은 본인도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관리에 더욱 주의를 기울였다. 생활관 내에서 휴대폰 사용으로 마찰이 일어나지 않을지, 휴대폰 기종에 따른 병사들 간의 위화감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다. 아직까지 시행 초기이기 때문에 속단할 수 없지만 의외의 장점을 엿보았다. 다함께 시청하는 텔레비전은 선임의 리모컨에 채널이 결정되었는데 지금은 병사 개개인이 좋아하는 음악이나 영상 등을 즐길수 수 있으니 미묘한 신경전이 사라졌다. 관심사가 비슷한 병사들끼리는 정보를 공유하며 더욱 돈독해지는 모습도 발견했다.
휴대폰 사용과 관련해 병사들 스스로도 통제하고 마찰을 줄일 방법을 모색했다. 병사들은 토의를 거쳐 생활관 내에서는 통화를 자제한다거나 동영상을 볼 때는 반드시 이어폰을 사용하는 등의 규칙을 만들어 마찰의 소지를 줄였다. 최 중대장은 "휴대폰 용도는 앞으로 지켜봐야겠지만 장병들 스스로도 사회에서의 고립감에서 벗어나 긍정적인 활용 방안을 찾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했다.

▶휴대폰 사용도 군인답게
"군대가 단체생활을 하고 정해진 규칙을 따른다는 의미에서 사회생활의 초석이 되기도 하지 않습니까? 병사들 휴대폰 사용도 규율 안에서 방향을 잡아준다면 건전하고 진취적인 방향으로 이용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왕 사용하는 거 잘 쓰도록 하는 거지요."
50사단 한권태 북구대대장은 두 아이의 아버지이다. 군인들이 휴대폰을 사용하기 시작할 때 집에 있는 딸이 먼저 떠올랐다. 스마트폰은 손에 쥐고 있으면 별다른 일이 없어도 계속 보게 되고 종일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그건 딸 뿐만 아니라 누구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스마트폰 중독이란 말이 생겨나지 않았겠는가. 장병들도 휴대폰을 사용하게 된 이상, 좀 더 건설적인 용도로 쓸 수 있도록 유도하면 어떨까 고민하게 되었다. 한 대대장은 장병들이 휴대폰으로 자기계발을 하는 동시에 군복무 중에는 부대의 문제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군인 사고 중 가장 심각한 것이 '자살'과 '음주' 관련 문제이다. 501여단에서는 장병들을 대상으로 이러한 문제점을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하는 공모전을 실시했다. 공모전의 결과물은 휴대폰으로 만든 콘텐츠로 제출하도록 했다. 장병들은 휴대폰으로 관련 자료를 검색하고 영상, 포스터 등의 콘텐츠를 만들어 제출했다. 응모작들은 현재 심사가 진행 중인데, 우수작 또한 장병들이 단체대화방에서 직접 투표해 결정한다. 우수작으로 뽑힌 장병에게는 포상 휴가가 주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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