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是看花卽索死(불시간화즉색사·꽃을 보고파 죽을 지경이 아니라) 只恐花盡老相催(지공화진노상최·꽃이 다 지면 늙음이 재촉할까 두려울 뿐) 繁枝容易紛紛落(번지용이분분락·꽃 무성한 가지는 쉽게 분분히 떨어져 내리니) 嫩葉商量細細開(눈엽상량세세개·여린 꽃잎이여, 상의해서 부디 천천히 피려무나)'.
봄을 노래한 시 한 수 읊어보자. 중국 당나라 시인 두보가 761년에 지은 연작 칠언절구(七言絶句) '강가에서 홀로 걸으며 꽃을 찾다'(江畔獨步尋花) 제7수다. 밝은 느낌은 그리 없다.
당시 그의 나이 쉰은 요즘 50과 천년 세월만큼이나 차이가 클 테다. 하지만 늙어간다는 것은 매한가지 슬픈 일이다. 쉬이 질 봄꽃을 바라보며 즐겁기만 하다면 아직 청춘이라 해야 할까, 철부지라 해야 할까?
압축 성장으로 대변되는 한국 경제가 피자마자 소소리바람에 떨어진 봄꽃 처지다. 꽃샘추위 기세에 밀려 얼어붙은 꽃봉오리 신세인지도 모른다. 연일 쏟아지는 암울 일색의 경제지표들을 보면 경착륙이 우려된다.
우리는 투자 악화, 고용 침체, 양극화 심화, 잠재성장률 하락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뒷걸음질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2일 "성장은 투자 및 세계 교역 감소로 둔화하고 있고, 고용 창출은 부진하다. 가계 부채 비율은 증가하고 있고, 부정적인 인구 변화와 생산성 증가 둔화가 향후 전망을 저해한다"고 한국 경제를 진단했다. 온 국민이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기관의 쓴소리라 그런지 머리카락이 쭈뼛 선다.
한때 한국의 성장 잠재력은 높게 평가받았다. 골드만삭스는 2005년 세계경제보고서를 통해 세계 각국의 장기 성장 시나리오를 분석하며 한국을 '넥스트 11'에 포함시켰다. 2020년 1인당 소득이 4만6천860달러에 이르러 캐나다, 이탈리아를 제칠 것으로 내다봤다.
장밋빛 전망대로는 아니지만 국내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해 3만달러를 돌파했다. 그러나 자부심을 느끼는 국민은 거의 없다. 오히려 골드만삭스가 14년 전 예측했던 4만달러 돌파가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란 자조가 팽배하다.
최근 대통령 지지율에 대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서며 또다시 '데스 크로스'를 이룬 건 당연한 일이다. 인심은 곳간에서 나온다는데 곳간이 비어가니 박수쳐줄 리 만무하다. 내년 총선 결과는 보나 마나란 소리도 이곳저곳에서 들린다. 1편이 망했는데 속편이 제작됐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 했다.
민심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청와대, 여당에도 비상이 걸린 모양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제2벤처 붐 확산, 대규모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수소 경제를 외치며 부산을 떨고 있다. 그래도 대통령이 말한 '물 들어올 때 노 젓겠다'는 리액션은 기대 난망이다.
2009년 1월 새떼와의 충돌로 뉴욕 허드슨강에 불시착한 여객기 사고 실화를 다룬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에서 체슬리 슐렌버거 기장은 냉철한 판단력으로 탑승객 전원을 구한 뒤 "We did our job"(우리는 제 할 일을 했어)이라고 말한다. 신년사에서 국가는 평범한 국민들이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도 임기를 마친 뒤 그런 멋진 한마디를 남기길 바란다. 그런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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