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인생 2막] "군자를 치며, 도를 배운다" 문인화에 푹 빠진 정연한 씨

은퇴 후 문인화 그리는 재미에 푹 빠진 정연한 씨. 최재수 기자

교직에서 은퇴한 정연한(67) 씨는 요즘 문인화에 푹 빠져 산다. 문인화 관련 책자와 도록을 통해 공부하는가 하면 일주일에 네댓 번은 서실을 찾아 문인화를 그린다. 정 씨는 "서실에서 붓을 잡고 머릿속에 그렸던 모습을 하얀 화선지에 채워가는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면서 "그림을 그리다 보면 마음이 안정되고 노년 생활의 활력소로 적극 추천하고 싶다"며 문인화 예찬론을 폈다.

◆"서예가 밑바탕 돼야 문인화로 확장 가능"

정 씨는 2015년 초등학교 교장에서 은퇴했다. 시간적 여유도 있어 넓은 세상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해외여행을 다니기도 하고, 건강을 위해 등산도 하지만 그가 정작 관심을 갖고 열정을 쏟는 것은 '문인화'이다. 이에 대해 정 씨는 "사군자의 정신을 본받기 위함"이라며 "이는 끊임없이 정진하는 작업이고 그렇게 하다 보면 인격이 수양되고 바른 마음이 길러지고, 수신재가치국평전하가 이뤄진다"고 했다.

정 씨가 문인화에 관심을 가진 것은 교감 때부터이다. "어릴 때부터 그림, 특히 수채화에 관심이 많았는데, 나이가 드니 서예와 문인화를 배우고 싶더라고요. 문인화가 채희규 선생을 만난 것도 그때였어요. 일주일에 한번 정도 서실에 나가 배웠습니다." 정 씨는 서예가 바탕이 돼야 문인화로의 예술적 확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정 씨는 "보통 그림은 형태와 색 등이 눈을 사로잡아 가장 먼저 눈을 즐겁게 하다. 다음 마음이 뒤따른다. 하지만 모든 그림이 그렇지는 않다. 마음이 움직이고 그 다음이 눈이 즐거운 그림이 있다. 바로 문인화의 세계가 그렇다. 그림에 생기와 재미를 불어넣는 여백의 운용은 작품 세계를 더욱 깊게 만든다"고 했다.

정 씨는 요즘은 일주일에 서너 번 청오서화연구원(채희규 선생이 운영)을 찾는다. 그가 주로 그리는 것은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등 사군자(四君子), 모두 수준급이라는 평가는 받는다. 그중에서도 대나무를 즐겨 그린다. "대나무는 대부의 기개가 있다고 하잖아요. 그 중에서도 군자의 상징으로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이 대나무입니다. 뿌리는 견고하니 덕을 세워 뽑히지 않고, 줄기는 곧으니 곧은 성질은 몸을 세워 중립하여 기울지 않고, 속은 비어 있으므로 도를 체행함으로써 겸허히 받아들이고, 마디는 지조와 절개를 나타내고, 잎은 항상 푸르니 변치 않는다고 합니다."

자신을 얻은 정 씨는 대한민국미술대전, 매일서예문인화대전, 죽농서예대전 등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해 각종 상을 수상했다. 주위의 권유로 단체전에도 참가하기도 했으며, 퇴임 직전 2014년에는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쑥스럽기만 합니다. 겨우 문인화에 눈을 떴을 뿐인데…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하다가 이제 군자정신 도 닦는 기분으로 합니다."

전문가들은 정 씨의 대나무 작품에 대해 "힘이 있다"는 평가를 하지만 정 씨는 문인화는 하면 할수록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여행도 하고 문인화 관련 책도 열심히 본다. "요즘은 열심히 그리기만 합니다. 친구에게 작품을 주기도 하지만 맘에 들지 않아 잘 주지는 않습니다. "

정 씨는 욕심은 없다고 하면서도 팔순 때에는 개인전을 열고 싶다는 마음을 드러냈다. "그때쯤은 지금보다 마음도 실력도 향상돼 있겠지요."

◆"미리 준비하면 노후 이상 무"

정 씨는 퇴직 이후의 계획은 일찍 할수록 좋다고 했다. "저는 10년 전부터 준비했는데, 이보다 더 일찍 하면 더 좋겠지요. 요즘 후배를 만나면 자신의 예를 들면서 초임 때부터 준비하라고 강력하게 권한다"고 했다. 정 씨는 은퇴 이후의 삶을 어떻게 계획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엄청나게 달라진다고 했다. "은퇴 이후의 삶이 길어 미리미리 계획을 세워야 한다. 계획과 경영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 씨는 아내와 함께, 아니면 뜻이 맞고 취미가 같은 이와 함께하면 무료하지도 않고 즐겁게 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