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과거사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으나 항간에는 어이없게 뜻도 모르는 일본 용어가 남용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뿌리박힌 잠재의식이 대물린 탓인가? 조선총독부의 "일본과 조선은 하나"라는 이른바 '나이센 잇타이(內鮮一體)' 정책으로 우리 문화를 짓밟고 민족의 고유한 성명과 언어까지 말살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난 3·1절 기념행사에 참석했던 한 인사가 주최 측의 행사 진행이 친일잔재 청산에 소홀했다고 비판하면서 정작 "도분이 나고 야마가 돌 것 같았다"고 일본 용어를 혼용하곤 눈도 한 번 깜짝하지 않았다. '도분'이란 일본 용어는 화가 난다는 뜻이고 '야마'는 머리를 뜻하는 표현이라고 한다.
어쩌면 '야마'라는 용어는 국민을 계도하는 언론사 기자들 사이에도 깊은 생각 없이 사용하고 있다. 그동안 많이 순화되었다곤 하나 걸핏하면 신문이나 방송의 머릿기사를 두고 '야마'라든가 기사 제목을 '미다시'라고 표현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특종이나 단독보도를 가리켜 '독고다네'가 아닌 '독고다이'라고 서슴없이 내뱉는 언론인도 있다. 태평양전쟁 당시 미 항공모함을 향해 돌진하는 제로센 전투기의 자살특공대 '가미카제 독고다이'를 오해한 게 아닌지?
국경없는 글로벌시대에 굳이 외래어를 배척하는 건 아니지만 정치권에서도 흔히 일본어 뿐 아니라 외래어를 즐겨 차용한다. 듣기 좋은 우리말보다 사뭇 프레임(틀)이니 어젠다(과제), 레토릭(논리), 스케일(규모), 모멘텀(탄력) 등 영어 문자를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것 같다. 외래어를 한 자라도 내뱉으면 자신의 품위를 높여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대기업이나 금융권에서도 보기 좋고 쓰기 편리한 우리글을 외면하고 굳이 영어 이니셜(머리글자)로 사명(社名)을 바꾸고 로고(조립문자)를 고집한다. 어디 그뿐인가. 도심지 상가의 상호까지도 도무지 그 뜻을 헤아릴 수 없는 국적 불명의 외래어 간판이 즐비하게 눈길을 어지럽히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도 국가원수의 공식 기념사에 걸맞지 않은 '빨갱이'라는 용어를 일제의 잔재로 언급하며 청산대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어원은 20세기 초 미국의 급진주의자들이 외친 공산주의의 상징 '레즈(REDS)'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부디 반일보다 극일을 위한 '우리 말'을 듣고 싶다.
이미애 대구미술협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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