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필름통] 칠곡가시나들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연상이/ 내 타입인데/ 이젠 없어.'

일본 어르신 시 짓기에서 대상을 차지한 92세 할아버지의 시다. 할머니가 연상이었는데 사망해서 이제 곁에 없다는 말일 수도 있고, 연상의 할머니들이 다들 돌아가셔서 연애할 사람이 없다는 말일 수도 있다. 전자라면 애틋함이 묻어나고, 후자라면 유쾌하고 건강한 노년의 삶이 위트 넘치게 그려진다.

99세에 시집 '약해지지 마'로 일본에서만 150만 부가 넘는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세계 최고령 시인 시바타 도요(2013년 101세로 사망). 그녀는 가세가 기울어지면서 평생 글 쓰는 일과는 먼 삶을 살았다. 어머니의 글 재능을 알아본 아들이 신문사에 시를 투고하면서 시인으로 데뷔했다. 이때 나이가 92세였다. '있잖아, 불행하다고/ 한숨짓지 마/ …/ 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아 있어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약해지지 마)

조곤조곤 말하듯 적은 시다. 시는 가장 솔직 담백할 때 공감하고 감동을 느끼게 된다.

다큐멘터리 영화 '칠곡 가시나들'(감독 김재환)이 화제다. 개봉 9일 만에 3만 명의 관객을 돌파했고, 10일에는 영화를 본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주인공 할머니들에게 편지와 선물까지 보내기도 했다. 할머니들은 팬 사인회까지 다니며 만년에 스타가 됐다.

영화는 칠곡군 약목면 일곱 할머니들이 주인공이다. 평균 나이 86세. 모두 1930년대생으로 평생 글을 모르고 살다가 인생의 끝자락에 한글을 배우는 할머니들이다. 처음 간판을 읽을 때 얼마나 기뻤을까. 할머니들의 인생 정담에 관객은 웃다가 울고, 또 웃다가 잔잔한 행복으로 울컥해진다.

'인생 팔십 줄 사는 기 와 이리 재민노' '가마히 보면 시가 참 만타/ 여기도 시/ 저기도 시/ 시가 천지삐까리다.' 할머니들의 시는 그 어떤 가식 없이 속마음을 콩 까고 치마 털 듯이 그대로 전해준다. 그게 이 영화의 힘이고, 우리가 잊고 지내고 있는 것들이다.

filmt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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