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울진군에서 만난 임석호(49·가명) 씨는 병실 밖 소나무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지난 2017년 시한부 선고를 받고 현재 마약성 진통제에 의지해 암을 견디고 있다.
말기 폐암환자인 그는 말을 조금만 해도 거친 숨을 몰아쉰다. 부인과 세 자녀에 대한 미안함과 생활고는 그의 어깨를 짓누르는 또 다른 짐이다.임씨는"가족들과 함께 금강소나무길을 마음껏 걸으면서 마음껏 숨쉬고 싶다"며 눈을 질끈 감았다.
◆ 유리먼지로 뿌옇던 작업장, 4년 만에 폐암 말기 판정
한울원자력 발전소 1·2호기에는 그의 피와 땀, 눈물이 섞여 있다. 낙후된 지역을 발전시켜줄 곳이자 여섯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고마운 발전소는 그가 폐암 말기·시한부 진단을 받자 매정하게 돌아섰다.
2013년부터 발전소 건설 하도급 노동자로 일한 그는 4년 만에 퇴직금 300만 원을 받고 쫓기듯 발전소를 떠나야 했다. 회사는'평소에도 지병이 있었던 것 아니냐'며 잡아떼기 바빴고, 치료받기 급급해 산재를 신청할 겨를조차 없었다.
사실 원전에서의 일은 고됐지만 노동시간에 따라 월 300만~500만 원 사이로 벌이가 넉넉한 편이었다. 매일 동트기 전에 나와서 해가 저물고 나서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고령의 홀아버지와 어린 세 자녀를 생각하면 저절로 욕심이 났다.
그러나 작업장 안에 날리는 견디기 어려웠다. 임 씨는 4년동안 발전소 지하 환기관로와 닥터형 환기구 보온작업을 하면서 유리솜(글라스 울)이 일으키는 유리가루를 끊임없이 마셨다.
그는 2017년 2월 감기가 낫지 않아 엑스레이를 찍었다가 폐암 말기라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었다. "평소 아픈 곳 없이 건강했지만 뿌연 먼지는 신경이 쓰였다" 며 "일일이 마스크를 끼고 하는 것이 작업상 어려울 때도 잦아 다들 잘 안썼다" 고 했다.
그는 강원도 강릉에서 항암치료를 받다가 조금이라도 가족과 시간을 더 보내고 싶어 치료를 중단했다. 시한부 선고 이후 2년이 넘도록 살아있지만 이미 위를 제외한 온몸에 암이 퍼진 상태라 손 쓸 방도가 없다.
사지를 뾰족한 칼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이어져 지난해 11월 식도로 물을 넘기지조차 못하게 되자 다시 함암치료를 받았지만 부작용으로 다리가 코끼리처럼 부어올랐다. 문병을 온 지인과 이야기를 하다가도 기절해 온종일 혼수상태에 빠지는 일도 부지기수다.
◆ 아이들 학교 준비물도 제대로 마련 못하는 생활고
현재 통증보다도 더 임씨의 어깨를 가장 무겁게 짓누르는 것은 생활고다. 지난해 위암으로 작고한 아버지를 홀로 간호하며 세 아이를 키우느라 그동안 보험 하나도 들지 못했을 만큼 생활이 빠듯했다. 그나마 가지고 있던 적금 1천500여만 원도 폐암 진단과 초기 항암치료에 들어갔다.
지금은 아내가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해 생계유지를 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자녀가 어려서 꾸준히 할 수 없다. 한참 놀 나이에 시키지도 않았는데 12살 맏이는 6살 막내를 보살피고 11살 둘째는 엄마와 함께 아빠 간호를 한다.
그는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아이들에게 한없이 미안하기만 하다. 강원도 삼척에 있는 대형마트를 갈 때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던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 그의 눈에 선하다.
"한번은 애들이 집 문을 나서면서 어렵게 '학교 준비물이 있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미리 알았더라면 돈을 꿔서라도 마련을 해줬을텐데 당시 정말 천 원짜리 한 장도 수중에 없었습니다. 눈물을 꾹 참고 '왜 이제서야 이야기 하느냐'고 애들을 무섭게 몰아붙였는데 그게 아직도 마음에 사무칩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더디게 말을 떼는 그의 눈가가 시뻘게졌다.ㄱ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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