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冬) 섣달 꽃과 같은 얼음 아래 다시 한 마리 잉어 같은 조선 청년.' 시인 정지용은 윤동주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문에서 윤동주를 이렇게 그렸다. 학창시절 친구들이 일본말로 이야기하면 그는 애써 우리말로 대했다. 우리말로 쓴 그의 시는 늘 민족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윤동주는 1943년, 조선의 독립과 민족 문화 수호를 선동했다는 죄목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2년 형을 선고받는다. 그리고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삶'을 살았던 그는 광복을 6개월 앞둔 1945년 2월, 외마디 비명만을 남기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동주와 나는 계속 주사를 맞고 있어요. 그 주사가 어떤 주사인지는 모릅니다.' 윤동주의 시신을 거두러 부친이 형무소에 들렀을 때 함께 투옥되었던 사촌 송몽규가 면회 중 들려준 말이다. 그 역시 한 달 뒤 같은 감옥에서 급사했다.
일본군은 1932년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에 '731부대'를 세웠다. 이 부대에서는 손발을 인위적으로 얼리는 '동상연구', 물만 먹고 얼마나 견디는지 보는 실험 등 잔혹한 '전쟁범죄'가 자행되었다. 피험자는 통나무라는 뜻의 '마루타'라는 은어로 통용되었는데 포로로 잡힌 조선인과 중국인들이 많았고 여성이나 아이들도 있었다.
나치 역시 2차 대전 중 유대인을 상대로 잔혹한 '인체 실험' 범죄를 저질렀다. 종전 후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전범 재판이 열렸는데 많은 독일 의사들이 심판을 받았다. '명령에 따른 것' 뿐이라는 의사들의 변명은 재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세계의사회(WMA)가 '의사에게는 비인도적 행위를 거부할 의무가 있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나치 의사들의 단죄를 계기로 인간 대상 의학연구에서 '자발적 동의'가 절대적 필수라는 '뉘른베르크 강령'이 나왔다.
그러나 일본의 전범 의사들은 731부대의 연구 결과를 미국에 제공한 대가로 '면죄부'를 받고 처벌을 피했다. 오히려 일본에서는 '생체 실험' 참여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업적'이 되었다. '생체실험'을 주도했던 이들은 의학계 주류가 되었다. 일본이 731부대의 비인도적 행위에 대한 진정한 반성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731부대는 항일독립군인가요?' 10여 년 전 731부대를 알고 있는지 한 국회의원이 국무총리에게 질의했을 때 돌아온 어이없는 대답이다. 올해로 3.1 운동 100주년이다. 과거에 눈을 감으면 현재도 볼 수가 없다.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한 그 날을 기억함과 동시에 일제 강점기에 자행된 비인도적 '의료윤리 파괴행위'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731부대'의 진실을 제대로 검증하고 역사적 심판을 해야 한다. 이러한 과거사의 극복이 있어야 모든 사람의 인권과 존엄성이 보장되는 '의료윤리'를 고민하고 지켜낼 수 있다.
'단죄'받지 않은 역사는 되풀이된다.
김동은(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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