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트럼프, 칠곡 비무장지대(DMZ) 비애(悲哀) 아시나요?

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한국은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히 그리고 영구히 일본국에 양여하고, 일본국은 이 양여를 수락하고 한국의 병합을 승낙한다.' '한국은 미국의 육·해·공군의 한국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허여하고 미국은 이를 수락한다.'

앞은 1910년 8월 22일, 일본의 강압으로 억지로 맺은 한일합방조약으로 나라를 주고받는 내용의 조항이다. 뒤는 1953년 10월 1일, 미국과 체결한 한미 상호방위조약 가운데 우리 땅에 미군을 둘 권한을 다룬 내용이다. 여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나라도, 땅도 우리 것이지만 주니까(양여·허여) 두 나라가 받는 듯한 겉모양새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삶터인 공간과 땅이 그들 차지가 된 사실이 그렇다. 이런 치욕과 굴욕의 조약이 이뤄진 까닭도 같다. 외침(外侵)과 우리 실정(失政)으로 힘을 잃은 탓이다.

그리고 두 조약의 체결 배경은 동전의 양면처럼 얽혀 있다. 앞은 '테디'란 별칭으로 잘 알려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일본과 1905년 몰래 맺은 미일밀약의 결과물이다. 한미방위조약은 일제 35년간 식민 잔재가 낳은 1950년 한국전쟁의 부산물로 생긴 족쇄다.

방위조약 이후 우리는 그 족쇄로 전국이 신음이다. 미군 주둔에 따른 숱한 민원, 규제 불만, 후유증 호소가 차고 넘쳐서다. 행정안전부가 2008년부터 관리, 지원하는 미군 공여구역 주변지역 즉 13개 시·도, 66개 시·군·구, 338개 읍·면·동 주민이 바로 그 피해자들이다.

전국 89곳(2016년)의 미군 기지 가운데 대구는 5곳, 경북은 10개 시·군 54개 읍·면·동에 4곳 미군 부대가 있는데, 경북은 경기도 다음으로 넓다. 특히 경북 1위인 칠곡 미군 기지는 그 면적만도 약 330만㎡(100만 평)로 군청 소재지 왜관읍 중심지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크고 드넓다.

1959년 공사, 이듬해 부대 배치로 왜관 도심 알짜배기 땅을 깔고 앉은 탓에 칠곡 발전 저해와 주민 불편, 불만은 마땅하다. 미군 주둔 주변은 많게는 10개쯤 규제가 겹치니 피해도 숱하다. 칠곡군이 매년 감수해야만 하는 64억원 지방세 감소, 1천억원 넘는 기회비용 부담도 그렇다.

또한 미군의 초교생 성폭행, 고엽제 매립 소동, 부대 창고 폭발, 한밤 사이렌 오작동 소동 등으로 칠곡 지역 사회 불안도 여럿이다. 부대 기지 이후로 옛 농지와 삶터를 잃은 한 마을은 마치 휴전선의 비무장지대와 같은 삶이다. 부대 너머 있는 논밭 농사는 미군 허락 때만 철조망 따라 네 철문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미군의 배려(?) 덕분이기도 하다. 불과 200~300m 철조망 농로를 막으면 위험한 찻길 수㎞를 목숨 걸고 빙 둘러 다닐 판이다. 그런데 부대는 갈수록 일일 허용 시간을 줄여 올해는 12시간뿐이다. 농민은 해가 좀 더 하늘에 머물거나 미군의 허용시간 연장을 바랄 뿐이다.

이런 농민과 칠곡의 가려진 손실과 고통은 잴 수 없다. 그래도 지금껏 참고 견딘 까닭은 국가 안보와 혈맹(血盟)으로 맺은 두 나라를 위해서였다. 이런 사정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갈수록 막무가내다. 북핵 협상과 남북 관계를 업고 미군 철수, 안보무임승차론 등으로 미군 주둔 비용을 더 늘리라고 떼를 쓰니 말이다.

비록 정부가 주민 피해를 위해 지원사업을 펼치지만 언발에 오줌 누기로 흉내에 그치고 끝없는 희생만 요구할 뿐이다. 미군 부대 주변 한인이여! 이 비애, 어찌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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