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덕의 기미년 만세운동은 '영해 3·18 만세운동'으로 대표된다.
이 운동은 경북에서 보기 드물게 3천 명의 대규모 시위대가 격렬하게 저항한 운동으로 기록된다. 주재소 일경으로는 감당이 안 돼 대구의 일본 군대까지 시위 해산에 동원됐다. 맨손으로 일제의 총검에 저항한 이 시위로 군중 8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쳤다.
100년이 지난 지금, 경북 어느 지역보다 격렬했던 영해 만세운동 현장의 도로와 건물들은 상당수 옛 모습 그대로이다.
만세운동이 처음 일어났던 당시 영해시장 싸전(미곡 시장) 양쪽. 군중들이 습격해 일본 순사 스즈키를 굴복시키며 장악했던 당시의 영해주재소는 현재 영해파출소로 남아 있고 길 건너에는 일제 수탈의 앞잡이 역할을 했던 영해금융조합 건물이 남아 있다.
당시 경북 동해안 최대의 영해장은 현대화의 물결과 함께 서남쪽으로 옮겨갔다. 100년 전 좁은 국도에서 현재는 소방도로 격하됐다. 100년 전 3천여 민중이 지났던 골목에 개발이 비껴가면서 오히려 원형 보존된 것이 아이러니하다.
당시 만세군중이 지나던 길의 도로명 주소는 현재 예주2길로 이름 붙여져 있다. 정작 도로명 3.18만세길은 전혀 엉뚱한 곳에 있다.

영덕군과 영해애향동지회는 매년 3.18을 기념하는 만세문화제를 열지만 정작 100년 전 만세가 일어났던 곳 대신 새로 옮겨간 영해시장과 의거 기념탑 일원에서 열리고 있다.
영해면 주민 A(56) 씨는 "영해 사람들은 이곳에서 3.18만세운동 뿐만 아니라 갑오 동학혁명보다 수십 년 앞선 영해 동학혁명이 일어난 것에 대해 자부심이 크다"며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좀 더 내실있는 행사를 열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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