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흥]대만 타이베이, '푸통푸통(扑通扑通)' 봄꽃 기행

양밍샨, 티엔위엔궁 등 꽃밭에서 취하는 봄
우리보다 먼저 무르익은 봄, 그러나 날씨는 변수
대만 여행 정통 코스 '예스진지'... 타이베이 주변도 권할 만

"이거 왜 이래!"

망했다. 날씨가 산통을 깬다. 벚꽃놀이 소재 삼아 나간 해외 취재에 잠시도 쉬지 않고 비가 온다. 2월 중순이면 벚꽃이 핀다는 '대만 타이베이'행이었다.

벚꽃이 만발하리라던 예상은 보기 좋게 씻겨 내려갔다. 벚꽃은 끝물은커녕 빗물에 떨어져 땅바닥에 박혔고 남은 몇 송이는 귀하기까지 했다.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비를 맞는 호사는 없었다.

장제스 총통을 기념하는 중정기념당 꽃나무 사이를 관광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김태진 기자
장제스 총통을 기념하는 중정기념당 꽃나무 사이를 관광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김태진 기자

그런데 벚꽃만 꽃이 아니었다. 벚꽃은 일찍 피었던 만큼 일찍 졌을 뿐이고, 벚꽃이 지자 다른 봄꽃들이 기막히게 제 차례임을 알았다. 미세먼지 난리 피해 다녀온 피진기행에 만족해야 하나 싶을 즈음 날아든, 낭보와 정신 승리의 애매한 경계다.

굳이 꽃으로 한정하지 않아도 매력적인 대만이다. 미세먼지 없는 봄을 심호흡하고, 소금커피와 버블티의 짭조름하고 쫀쫀한 맛을 저렴하게 만끽하고 싶다면 선택할 수 있는 곳이다. 대구공항에서 바로 갈 수도 있다.

봄은 순식간이다. 우리에겐 짧아 간드러진 봄이 한창 무르익어 있는,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다.

◆양밍산(陽明山)과 단수이(淡水)

양밍산 꽃축제를 즐기고 있는 관광객들의 모습. 벚꽃 시즌은 예상보다 빨리 끝났지만 만발을 노리고 있는 그 밖의 봄꽃들이 즐비하다. 김태진 기자
양밍산 꽃축제를 즐기고 있는 관광객들의 모습. 벚꽃 시즌은 예상보다 빨리 끝났지만 만발을 노리고 있는 그 밖의 봄꽃들이 즐비하다. 김태진 기자

오직 꽃놀이를 위해 선택한 대만이라 하니 현지인들은 지체 없이 양밍산을 추천한다. 대만이 자랑하는 타이베이 외곽 국가공원이다. 타이베이 시내와 멀지 않다. 가기도 쉽다. 타이베이 여행의 기준점이 되는 타이베이역 북문 2번 출구 앞에서 260번 버스를 타면 종점이 양밍산이다. MRT(Mass Rapid Transit, 도시철도 개념으로 이해하면 편하다. '捷運'이라 쓰여 있다.) 젠탄역에서 R5(紅5)를 타도 마찬가지다.

버스 안에서 바깥을 내다본다. 단독주택이, 레스토랑이 드문드문 나타난다. 팔공산 가는 길과 닮았다. 문화대학 캠퍼스가 중간에 없었더라면 착각했을 정도다.

양밍산 꽃축제의 주 무대인 꽃시계. 국가공원인 양밍산에서는 매년 2월 중순에서 3월 중순까지 한 달간 꽃축제가 열린다. 김태진 기자
양밍산 꽃축제의 주 무대인 꽃시계. 국가공원인 양밍산에서는 매년 2월 중순에서 3월 중순까지 한 달간 꽃축제가 열린다. 김태진 기자

양밍산은 넓어서 내부순환 버스가 따로 있다. 108번 버스다. 유황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샤오여우컹(小油坑), 새하얀 칼라꽃으로 유명한 쭈즈후(竹子湖) 등도 관광명소다. 원하는 곳에 내려 둘러보고 있으면 108번 버스가 또 오니 그걸 타고 이동하면 된다. 양밍산에서 꽃놀이만 노린다면 꽃시계로 가는 버스를 따로 타야 한다.

버스로 3분 남짓. 꽃밭이 피어 있다. 현지인의 '좋아요'가 넘쳤던 양밍산 꽃축제의 주 무대다. 이름을 몰라 송구했던 봄꽃들도 곳곳에 피어나 무르익은 봄을 알린다. 마치 야외 꽃 가게에 온 듯하다. 개나리와 벚꽃의 어우러짐에도 탄성을 내지르던 입은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벌어지고, 그야말로 눈이 돌아간다.

양밍산 자락에는 대만 현지인들이 편애하는 꽃놀이 추천지가 하나 더 있다. 티엔위엔궁(天元宮)이다. 양밍산 자락이지만 실제로는 MRT 단수이역에서 버스를 타야 한다. 왕복 2차로 도로로 10여분을 달린다.

도교 사찰인 티엔위엔궁. 대만 현지인들의 꽃놀이 추천지다. 김태진 기자
도교 사찰인 티엔위엔궁. 대만 현지인들의 꽃놀이 추천지다. 김태진 기자

거대한 도교 사찰이다. 산을 오를 필요는 없다. 버스에서 내리면 바로다. 타이베이시민들의 3월 꽃놀이에 수위를 다투는 명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이곳의 절정기는 오지 않았다. 사찰 건물 뒤로 뻗어있는 꽃동산 나무마다 솜털이 터진 봉오리가 선명하다.

단수이는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에 일부가 등장하면서 더 많이 알려진 곳이다. 남지나해 바닷물이 단수이허(淡水河) 강물과 만나는 곳이다. 우리로 치면 낙동강 하구쯤 되겠다. 바다의 시작인지 강의 끝인지 구분하기 애매할 만큼 폭이 광대하다. 그래서 단수이 해변이라 불러야 할지 강변이라 불러야 할지도 모호해진다.

쩐리대학 캠퍼스를 배경으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어가 워낙 많이 들려 국내 관광지인 듯한 느낌마저 준다. 김태진 기자
쩐리대학 캠퍼스를 배경으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어가 워낙 많이 들려 국내 관광지인 듯한 느낌마저 준다. 김태진 기자

그 영화를 국내에서 그렇게들 많이 본 걸까. 포트 산 도밍고(Fort San Domingo)란 별칭의 홍마오청(紅毛城)과 쩐리대학(眞理大學)이 가까워지자 한국어가 엄청나게 들려온다. 해변인지, 강변인지 모호한 이곳을 따라 늘어선 가로수들이 제법 봄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가로수를 따라 걷는 이들이 제법 있다.

하지만 일몰 감상 포인트인 '연인의 다리'와 '위런마터우(漁人碼頭)'까지 걸어가려 해선 곤란하다. MRT 단수이역에서 3km 이상 떨어져 있는 곳이다. 함께 걸으면 헤어지지 않는다는 속설을 믿다가 욕설을 각오해야 할 거리다. '여행은 걷는 게 기본'이라는 의무감은 버려도 좋다. 단수이 지역 아파트 구조 파악이나 도시 구조 분석 등 연구 목적이 아니라면 버스를 타야 한다. 무엇보다 타이베이 시내 대중교통 요금은 15대만달러(우리 돈으로 약 550원)로 저렴하다.

◆중정기념당(中正紀念堂)과 그 주변

중정기념당에서 보여주는 근위병 임무교대식. 관광객 대부분이 촬영을 하고 있지만 소문난 잔칫상이다. 절도 있기로는 우리나라 군인들이 한 수 위다. 김태진 기자
중정기념당에서 보여주는 근위병 임무교대식. 관광객 대부분이 촬영을 하고 있지만 소문난 잔칫상이다. 절도 있기로는 우리나라 군인들이 한 수 위다. 김태진 기자

과외에만 족집게 강사가 있는 게 아니다. 초행길이라면 여행사들의 오랜 경험에 무임승차하는 것도 지혜다. 패키지 여행코스는 사실 켜켜이 쌓인 노하우다. 대만여행이 곧 '예스진지(예류해양지질공원, 스펀마을, 진과스 황금박물관, 지우펀마을)'로 대표되는 건 노하우의 압축판이다.

타이베이에서도 속성으로 다녀갈 수 있는 곳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중정기념당, 국립역사박물관, 롱산스 코스다.

꽃무더기의 절제와 단정함, 고상함을 모두 갖춘 곳은 사실 중정기념당이다. 조경의 정수를 볼 수 있다. 중정은 대만의 국부 장제스 총통의 아호다. 장제스의 아들, 역시나 총통이었던 장징궈가 아버지의 업적과 통치 기간 동안의 활약상을 기리고 전시해 놓은 곳이다.

중정기념당에서 본 자유광장의 모습. 김태진 기자
중정기념당에서 본 자유광장의 모습. 김태진 기자

대만에서는 1990년 민주화 요구가 빗발쳤는데 시민들은 이곳에서 시위를 펼쳤다. 결국 1994년 총통직선제까지 따내게 되는데 역사의 현장에는 '자유광장'이란 이름이 붙어 있다.

중정기념당과 패키지로 묶였던 인근 국립역사박물관은 지난해 7월부터 내부 수리로 개방하지 않는다. 2021년 하반기에나 재개장 예정이다. 대신 바로 옆 타이베이식물원이 추천할 만한 휴식처다. 미세먼지가 없어 전반적으로 숨쉬기 편한 타이베이 시내라지만 식물원 안으로 들어오면 소나무숲길에 서있는 듯 들숨이 깊어진다.

국립역사박물관과 붙어 있는 타이베이 식물원. 김태진 기자
국립역사박물관과 붙어 있는 타이베이 식물원. 김태진 기자

식물원 한쪽에 1892년 준공된 청나라 사신들의 숙소가 잘 보존돼 있다. '흠차행대(欽差行臺)'란 이름이다. 황제의 명령으로 파견된 사신이 머문 곳이라는 의미로 해석하면 무리가 없다. 그렇다고 사신 숙소를 이렇게까지 보존하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1919년 현재의 총통부가 세워지기까지 25년간 일제강점기(1895~1945) 대만 행정의 중심이었던 곳이다. 원래 중산홀에 있던 것을 1933년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타이베이 시내에 있는 사원 롱산스. 김태진 기자
타이베이 시내에 있는 사원 롱산스. 김태진 기자

타이베이 식물원은 여행사 패키지 여행코스로 추천되는 시먼딩, 롱산스와 가깝다. 현지인들의 생활을 느껴볼 수 있는 대형마트도 근처에 있다.

불교와 도교, 민간신앙이 복합된 독특한 사원 롱산스(龍山寺)로 가는 길은 꽃길과 거리가 멀다. 대낮에 걸어왔음에도 분위기가 싸하다. 무법천지란 뜻은 아니다. 유명 종교시설로 입소문은 많이 탔으나 MRT 롱산스역 주변에는 노숙자들의 것임이 분명한, 타이베이역에서도 대량으로 목격된, 꾸러미가 한쪽에 정돈돼 있다.

◆야시장의 도시

타이베이는 야시장의 도시다. 오후 5시 즈음이면 개장하기 시작하는데 관광객뿐 아니라 현지인들도 바글바글하다. 타이베이의 유명 야시장 중에서도 관광객에 익히 알려진 스린(士林)야시장과 현지인에게 인기 있다는 닝샤(寧夏)야시장을 찾았다.

타이베이 최대의 야시장인 스린야시장. 한 바퀴 돌고 나면 취두부가 코에서 빠지지 않는 느낌이다. 김태진 기자
타이베이 최대의 야시장인 스린야시장. 한 바퀴 돌고 나면 취두부가 코에서 빠지지 않는 느낌이다. 김태진 기자

'닝샤'라는 이름을 야시장에서 마주하다니. 중국인들도 '거기가 어디냐'고 묻는다는 닝샤다. 회족의 중심이라는 그곳이 야시장의 이름으로 붙어 있다. 혹시나 주변에 모스크가 있나 살펴보니 없다.

타이베이 시내에는 중국 본토의 지명이 곳곳에 남아있다. 롱산스 인근의 거리 이름엔 광저우, 총통부 앞 거리에는 충칭이 있다. 고향을 두고 온 이들의 그리움이 지명으로 남은 것이었다. 경북 북부지역 사람들이 일제강점기 만주에 가 살면서 '안동촌(安東村)'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과 비슷했다.

어쨌거나 야시장에 들러 대만의 소울푸드로 알려진 초우떠우푸(臭豆腐)를 먹지 않고 갈 수는 없는 일. 이름에서 오는 명성을 익히 들은 터라 허기를 자처한 뒤 야시장에 들어섰지만 적응하기 쉽지 않은 향이다. 분명 여러 가지 음식이 있다는 걸 눈으로는 봤지만 코가 기억하는 건 취두부뿐이었다. 난생처음 맡아보는 특유의 향에 상큼한 뭔가를 갈구하게 됐는데 때문에 버블티와 소금커피가 상대적으로 돋보였는지 모른다.

맛있는 두부도 널렸다. 대표가 떠우화(豆花)다. 달달한 물에 삶은 땅콩, 그리고 연두부가 섞였다. 40대만달러(우리 돈 약 1천500원) 정도다. 간식용으로 제격이다.

◆샹산(象山)에서 보는 타이베이 101빌딩

샹샨에서 본 타이베이 101 빌딩. 김태진 기자
샹샨에서 본 타이베이 101 빌딩. 김태진 기자

대만의 랜드마크, 타이베이 101 빌딩을 우선 순위 야경 전망대로 꼽는 게 외국인들의 시선이었다면 대만 현지인들의 시선에서는 샹산이 최적지다. 샹산으로 오르는 길이 힘들어서 그렇지 일단 오르면 '과연 명당'이란 말이 절로 나온다. 샹산은 동네 뒷산 치고 좀 높은 편이다.

산을 오르내리다 생긴 정신의 혼미함으로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샹산 입구에서 시작해 전망이 가장 좋다는 육거석(六巨石) 전망대까지 총 953개 계단을 오르면 '타이베이101'이 코앞이다.

43층 빌딩 높이의 샹산 전망대에서 보는 타이베이 시내 야경은 일품이다. 운동도 되고 공기도 맑아 정말이지 야간 산행을 나온 기분이다. 어떻게들 입소문이 났는지 한국어가 많이 들린다.

◆소소하게 알아둘 것들

-비행기로 약 3시간 걸려 닿는 대만은 별도로 비자를 신청할 필요가 없다.

-대낮 출발, 대낮 귀국의 김포 출발, 송산(타이베이 시내) 도착이 시간대로는 편하긴 하나 대구에서 직항은 타오위안 도착 밤 비행기다.

-밤 비행기의 장점이자 단점은 가격은 싼데 피곤하다는 거다. 귀국하는 길에 면세점에 들러 기념품을 사겠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접어 캐리어에 담아야 한다. 5월이면 낮에 출발하고 낮에 도착하는 비행기가 취항 예정이라 한다.

-날씨를 꼭 확인하고 가야 한다. 비가 오면 춥다. 우산을 안 챙겨온, 여름옷으로 온, 슬리퍼를 신고 온 여행객이 더러 있다.

-교통카드 용도나 편의점 결재 용도로 쓸 수 있는 '이지카드'를 만들면 편하다. 사용할 돈을 미리 충전해서 쓰는 식이다. 카드값만 100대만달러(우리 돈 3천600원 정도)다. 되팔 수는 없다.

※취재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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