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권위주의자의 시대

박병선 논설위원
박병선 논설위원

영화 '포레스트 검프'(1994년 작)에는 지능이 떨어지고 달리기밖에 할 줄 모르는 톰 행크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포레스트가 성장하면서 미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큰 사건에 연관되는 줄거리를 갖고 있는데, 화면 곳곳에 비유와 풍자가 가득 들어 있다.

포레스트가 군에서 제대해 첫사랑 제니와 만났는데, 제니는 남자친구 웨슬리를 데리고 나온다. 웨슬리는 버클리 대학의 SDS(Students for a Democratic Society) 리더로 진보적인 학생운동가였다. 웨슬리는 포레스트를 월남전에 참전했다는 이유로 '살인자'라고 모욕하더니만, 제니와 말다툼을 하다가 제니의 뺨을 세게 때린다. 웨슬리가 다음 날 제니에게 사과하면서 내뱉은 말이 압권이다. "미안해, 때릴 맘이 없었던 것은 알잖아. 이게 다 망할 놈의 월남전과 정권 때문이야!"

권위 의식에 물든 진보주의자는 어디에나 있다. 이들은 자신의 잘못조차 남 탓이나 정치적 음모로 여긴다. 지난해 말 김포공항에서 신분증을 꺼내 보여달라는 24세 직원에게 갑질을 한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비슷한 범주다. 김 의원은 부산대 재학 중 학생운동으로 구속된 경력이 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호위무사'로 불리는 진보 정치인이다. 이 사실이 보도되고도 며칠 동안 사과조차 하지 않고 버텼는데,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 이유는 이러했다. '뭔가 음모가 있는 것 같다' '문재인 정권에 대한 공격의 일환이다'.

요즘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고 연설한 것을 두고 난리다. 이 발언이 대통령을 폄하한 점에서 지나친 것은 분명하다. 그보다 더 황당한 것은 민주당의 반응이다. 이해찬 대표는 '국가원수 모독죄'라고 흥분했고, 민주당은 의원 전원 명의로 나 원내대표를 국회 윤리위에 제소했다.

젊은 시절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어 탈권위, 탈독재를 외쳤던 이 대표의 행동치고는 참으로 유치찬란하다. 발언이 옳든, 그르든 간에 남의 입을 막겠다는 발상은 권위주의의 최고봉이다. '혹독한 시집살이를 겪은 며느리가 못된 시어머니가 된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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