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창호(가명)씨는 대구 도심에 위치한 직장 건물 7층 옥상에서 양봉을 한다. 전업 양봉농이 아니라 단층짜리 벌통 3개를 가진 '도시 양봉인'이다. 본업은 연구직이다. 그가 도시양봉을 하는 이유는 '대구가 생태적으로 살아 있음을 확인' 하는 동시에 '자연을 건강하게 보존하자는 소망' 때문이다. 꿀벌 개체수를 늘려 대구의 자연을 더 건강하게 가꾸고 싶다는 바람을 담고 있는 것이다.
홍 부장이 도시양봉을 시작한 계기는 격월간 잡지 '녹색평론'에 실린 칼럼을 접하면서부터다. 자원을 마구 소비하는 방식에서 조금 벗어나 '자원 순환'에 관심을 기울이자는 내용이었다. 그는 꿀벌이 자원순환의 상징이자 핵심이라고 말한다.
◇ 꿀벌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
꿀벌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꿀이 아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 중 1/3이 꿀벌의 도움을 받아 생산됩니다. 상당수 식물은 꿀벌의 도움을 받아 수정하고 열매를 맺으며 번식합니다. 많은 동물들이 그 식물을 먹고 살아갑니다. 꿀벌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죠. 꿀벌이 없다면 지구상의 많은 생물이 소멸할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도시양봉은 1990년대 초 런던, 파리 등 유럽에서 먼저 시작됐다. 현재는 일본 도쿄, 미국 뉴욕 등으로 확산됐다. 이들이 도시양봉을 시작한 이유 역시 대구의 홍 부장과 다르지 않다.
런던과 파리 시민들은 기후변화와 농약 사용 등으로 꿀벌 개체수가 줄어드는 데 대한 반성에서 도시양봉을 시작했다. 그들의 양봉 목표는 꿀벌 개체 수 증가와 꿀벌의 가치를 알리는 데 있다. 꿀 채취는 부차적이다. 유럽에서는 꿀벌을 돼지, 닭에 이어 축산물 경제 가치 3위 동물로 평가하기도 한다.
미국 백악관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꽃가루 매개자(곤충)가 미국 경제에 240억달러(약 24조) 이상 기여한다. 이 중 꿀벌은 우리에게 과일, 열매, 야채를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함으로써 150억 달러(약 15조) 이상을 차지 한다"며 환경오염으로 개체수가 급감하고 있는 꿀벌을 보호하자고 호소한 바 있다.
◇ 도시양봉을 보는 불편한 시선
도시양봉에는 난관이 많다. 대량생산을 목표로 하지 않는 만큼 양봉기술 문제는 부차적이다.
가장 큰 난관은 '벌이 쏘지 않을까' 사람들이 우려하고, 그런 까닭으로 양봉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홍 부장이 인터뷰에 응하고도 가명을 당부한 것도 그 때문이다. 현재는 주변의 몇몇 동료들만 그의 양봉 사실을 알고 있지만, 직장 내 다수가 알게 되면 반대 목소리가 거세지지 않을까 염려된다는 말이었다.
홍 부장은 "양봉 이전에도 우리 주변에는 꿀벌이 있었다. 일부러 벌통을 들쑤시지 않는 한 꿀벌이 사람을 쏘지는 않는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기자가 홍 부장의 벌통 앞에 쪼그리고 앉아 사진을 찍고 이리저리 관찰도 했지만 꿀벌들은 잉잉 날아다녔을 뿐 쏘지 않았다.
직장 내 시선도 곱지 않다. "회사 일은 언제 하느냐?"는 것이다.
홍 부장은 "벌통을 보살피는 데 필요한 시간은 하루 평균 20분 정도다. 그것도 낮에는 차 한 잔 들고 옥상에 올라가 꿀벌들을 향해 '오늘은 어디까지 갔다 왔니?' '어떤 꽃이 피었던?' 하고 혼잣말을 하며 즐거워하는 5분 정도에 불과하다. 벌통을 보살피는 일은 해가 진 뒤에(근무시간 종료 후) 하는 일이다. 해가 진 뒤에야 꿀벌들이 모두 들어오고, 꿀벌을 공격하는 말벌들도 모두 제집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 시간도 10~15분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 1년에 1회 채취…장비 간단
도시텃밭농부들과 마찬가지로 홍 부장의 도시양봉 역시 '작은 양봉'을 지향한다. 생산과 판매에 목적을 두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채밀기 같은 큰 장비는 필요 없고, 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설탕을 주고 꿀을 빼앗지도 않는다. 필요한 장비는 벌통, 벌집, 꿀칼, 봉솔, 벌망, 훈연기, 목장갑 정도이며, 초기 준비물 비용은 30만원 안팎이다. 주된 일은 벌통 옆에 물통을 달아 물을 갈아주고, 9월 말에 기승인 말벌을 쫓고, 한 겨울에 혹 식량이 부족하지 않을까 염려되어 설탕물을 조금 넣어주는 정도다.
"일반적으로 양봉농가에서는 1년에 3,4회 꿀을 채취한다고 합니다. 저는 4월 말~5월말 아카시아 꽃이 지천일 때 1회만 꿀을 채취합니다. 나머지 기간은 벌들이 저희끼리 살도록 내버려 둡니다."
◇ 벌꿀 나누며 이웃 정도 나눠
홍 부장은 2018년 단층짜리 벌통 3개에서 10리터가 조금 넘는 꿀을 채취했다. 연중 1회 채취한 양이다. (그의 직장 건물 근처에는 비교적 나무가 많다.) 채취한 벌꿀을 6병으로 나누어 2병은 가족들이 먹고, 나머지 4병은 직장동료와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벌꿀을 받은 동료는 아침에 식빵에 벌꿀을 발라 아침 식사가 부실한 직원들에게 내놓았어요. 또 어떤 사람은 벌꿀차를 준비해주었고요. 작은양봉을 했을 뿐인데 주변에 이야기꽃이 피었습니다. 꿀벌이 생태계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관계까지 보살피는 셈이죠."
홍 부장은 꿀벌을 '자연과 경제순환의 핵심, 생태계의 바로미터'라고 강조한다. 또 자신은 양봉을 통해 자연과 교감하고 충만한 기쁨을 얻고 있다고 말한다. 양봉을 시작한 뒤로는 출근길이 그야말로 흥겹고 행복하다고 했다.
댓글 많은 뉴스
12년 간 가능했던 언어치료사 시험 불가 대법 판결…사이버대 학생들 어떡하나
[속보] 윤 대통령 "모든 게 제 불찰, 진심 어린 사과"
한동훈 "이재명 혐의 잡스럽지만, 영향 크다…생중계해야"
홍준표 "TK 행정통합 주민투표 요구…방해에 불과"
안동시민들 절박한 외침 "지역이 사라진다! 역사속으로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