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타임캡슐] 봄비와 비닐우산

푸른 비닐과 대나무 우산살의 조합, 비닐우산
봄비가 주던 두근거림과 함께 떠오른 우산의 추억

봄비와 함께 떠오르는 비닐우산의 추억. 1966년 대구시내에서 행인들이 빗길을 걸어가고 있다.
봄비와 함께 떠오르는 비닐우산의 추억. 1966년 대구시내에서 행인들이 빗길을 걸어가고 있다.

1966년 봄비가 내리던 어느 날이다. 대구 중구 남일동 거리에서 찍힌 행인들의 사진이다. 비닐우산이 단박에 눈길을 끈다. 4명의 행인이 지나는데 3명의 우산이 비닐우산이다.

비닐우산은 비닐을 둥글게 잘라 대나무 꼬챙이를 우산살로 삼아 만들었다. 흑백사진이어서 불분명하지만 분명 연한 푸른색의 비닐일 것이다.

비닐우산은 우산살로 대나무가 몇 개 들어갔느냐에 따라 처우가 달랐다. 비 오는 날의 멋을 담보하던 속칭 '패션 아이템'이 되기도 했고, 몇 번 쓰다 폐기되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사진에 맨 왼쪽에 보이는 비닐우산은 우산살이 24개가량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저 정도면 일회용이 아니었다.

하지만 비닐우산은 시간이 갈수록 우산살의 숫자가 줄었다. 날림의 수순을 밟은 속칭 '재료비 아껴 수익 불리기 법칙'이었다. 1970년대 후반에는 우산살이 9개로까지 줄어든다. 법칙에 따라 비바람에 견딜 수 없게 될 지경에 이르자 비닐우산은 차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비닐우산과 별개로 행인들의 복장은 아직 겨울이다. 예나 지금이나 봄비가 내리고 나면 꽃샘추위도 없는 진짜 봄이 올 거라는 바람이 강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봄비가 내리면 겨우내 숨죽였다 갓 싹을 틔운 풀이 더 큰 키로 자라났다. 꽃잎과 나뭇잎은 선명한 색깔을 짜냈다.

아스팔트 도로가 많지 않던 때, 온 동네에 진한 흙냄새를 풍겨주던 봄비였다. 입학, 개학 등 시작과 맞물려 내리는 비였기에 봄비는 새로움으로 해석됐다. 행복 회로를 돌리는 비였다. 귀한 대접을 받던 봄비는 최근 들어 미세먼지까지 씻어주면서 한층 위상이 높아졌다.

"봄비야, 반갑다."

※'타임캡슐'은 독자 여러분들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진, 역사가 있는 사진 등 소재에 제한이 없습니다. 사연이, 이야기가 있는 사진이라면 어떤 사진이든 좋습니다. 짧은 사진 소개와 함께 사진(파일), 연락처를 본지 특집기획부(dokja@imaeil.com)로 보내주시면 채택해 지면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진 소개는 언제쯤, 어디쯤에서, 누군가가, 무얼 하고 있는지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채택되신 분들께는 소정의 상품을 드립니다. 사진 원본은 돌려드립니다. 문의 특집기획부 053)251-1580.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