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택 화백은 평북 정주가 고향이다. 소월과 백석, 이중섭 등을 배출한 오산학교를 나왔는데 그곳서 임용련 선생의 영향으로 화가의 길을 정했다. 졸업 후 부친의 반대에도 도쿄 가와바타 미술학교에 들어갔다. 하루 두 번 조석간 신문 배달로 고학에 가까운 유학생활을 하며 전쟁에 내몰린 시국을 견디다 중도에 귀국했다. 해방의 환희도 잠깐 분단과 함께 닥친 6.25전쟁을 겪고 목숨 건 월남과 신산의 유랑 끝에 대구에 정착해 비로소 새 삶을 펼칠 수 있었다.
파란 많았지만 선생의 작품세계에는 동심의 순수함이라든가 형식에 구애됨 없는 자유와 높은 격조가 느껴진다고 평한다. 실제로 어린아이 소재가 많고 현실과 자연의 형상들을 심상적인 이미지로 재구성한다. 즐겨 쓰는 맑고 밝은 색상들은 따뜻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풍경 소재에서는 산과 들 바다의 모습들이 항상 정겹고 아련해서 문득 고향의 모습들이 아닐까 했다. 북쪽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이 평생 그리움을 가슴에 묻고 산다는 것을 알면 선생의 작품 곳곳에도 고향의 그림자가 짙게 드린 것을 깨닫게 된다. 통일이 너무도 요원해 한동안 애써 잊고 살려고 했다는 말씀까지 하시는데 수구초심이라고 했든가.
"경의선 철도가 지나가는 고향 뒷산 언덕에 오르면 서해바다가 손에 잡힐 듯 내다보이고 어족이 풍부한 바다에서 늘 싱싱한 생선을 먹을 수 있었다. 넓은 곡창지대인 그곳 '니동쌀'은 밥맛 좋기로 유명했고 마을 앞을 흐르는 실개천과 집 앞 연못에는 월척 붕어가 헤엄치고 뒷산에는 께드득께드득 수꿩이 울었다. 연못 아래 모든 식량을 자급자족하던 전답을 지나면 강이 있어서 여름철 삼복더위에 물장구치며 멱 감기 좋았다."
그래도 선생의 경우 부모형제가 모두 월남에 성공해 이산의 고통은 덜했다 들었다. KBS의 '이산가족 찾기 방송'이 있기 몇 해 전 1981년에 〈귀로〉와 〈환향〉 두 연작을 그렸는데 거기서 고향을 찾아 돌아가는 한 무리의 사람들과 마침내 해후하는 장면을 담았다. 극적인 상봉의 중앙에 백발의 두 노인이 있는데 함께 모셔오지 못했던 장인과 장모님이라 했다.
그림 속 고향의 이미지는 터와 장소에 대한 기억을 중심으로 이상화된다. 푸른 들과 흰 구름, 강물과 바닷가 등 전선택 작품의 수많은 배경은 모두가 고향의 이미지에서 온 것 같다. 지형적 특성은 물론 의식의 저변에 있던 색과 빛으로 전달할 수 있는 모든 감각적 요소들이 파스텔 톤으로 그 주위로 채워진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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