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화면에 상하로 반복되는 검은 선의 연결은 보는 이로 하여금 철조망을 연상하게 만든다. 물감을 흠뻑 묻힌 붓으로 자유롭게 휘두른 화면에는 튕겨 나온 물감자국이 그대로 있다. 형식이나 형태에 구애받지 않고 화면 위에 신나게 칠한 붓질에서 신명이 물씬 묻어난다.
역동적 페인팅으로 행위미술가의 퍼포먼스와 회화, 설치, 조각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며 한국 행위미술의 예술적 기틀을 마련하고 있는 이건용(77) 작가의 신작을 선보이는 'Body+Scape=BodyScape'전이 리안 갤러리 대구에서 4월 30일(화)까지 전시된다.
작가가 창안한 신조어인 'BodyScape'는 신체 퍼포먼스를 이용한 회화 연작 작품 제목이다. 즉, 반복적으로 선을 긋는 신체 행위가 주변 공간과의 상호작용에 의한 것임을 천명한 것으로 이번 전시에서는 'Body'(신체)와 'Scape'(풍경)을 다시 분리한 더하기와 등호를 부가해 작가의 예술적 신체 행위와 우리의 일상 풍경 속 행위들의 연계성을 더욱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음을 명백히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이건용의 행위미술은 단적으로 '회화는 어떤 대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는 주체로서의 자신의 몸과 행위가 직접적인 객체로서 2차원 평면에 표현되는 양식'임을 의미하는 '신체 퍼포먼스=회화'라는 명제로 귀결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작가의 예술세계는 고교시절 탐독한 메를로-퐁티의 현상학과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이 토대가 되고 있다.
메를로-퐁티가 "의식은 몸을 매개로 한 사물에 대한 존재"라고 했던 것처럼 작가는 공간 안에서 사물과 상호 관계를 맺는 자신의 몸짓을 하나의 항(項)으로 설정하고 있으며 상하 반복적 인 붓질이라는 행동을 극한까지 밀어붙일 때 일어나는 동어반복적 행위는 비트겐슈타인의 동어반복의 명제가 의미하는 '알 수 없음'의 상태와 유사하지만 그 행위가 반드시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공간 이동, 시간 흐름, 미세한 힘의 차이 등을 감지할 수 있는 '동일하지만 동일하지 않는 선'들이 되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새롭게 시도한 버려진 상자를 이용한 페인팅 설치 작업도 이러한 예술적 행위의 연장선상에 있다. 작가는 모양과 크기, 색상이 제각각인 상자들은 선별해 상자 겉면에 반복적 선긋기를 통해 또 다른 회화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2차원 평면의 캔버스와 달리 3차원 입체 상자 안쪽과 바깥쪽에 그린 선긋기를 통해 입체적 회화를 선보이며 이것들을 다시 바닥에 쌓거나 천장에 매달아 다양한 조형적 설치작품으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이건용은 상자 작업을 통해 예술 영역에서 제외됐던 쓸모없는 오브제와 미술 관객으로부터 소외됐던 불특정한 사람들의 삶의 일부를 미술 안으로 수용, 회화와 설치 미술이라는 새로운 지위를 부여하고, 예술과 일상이 통합된 논리적 사유체계를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것이다.
리안 갤러리 대구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이건용의 'Body+Scape=BodyScape'전은 현대 예술의 영역 확장은 물론, 더 나아가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 사유의 기회를 제공한다. 전시 작품은 120여점. 문의 053)424-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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