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는 갑자기 온몸으로 기침을 했다. 그는 곧 죽을 것 같았다. 한 폐인이 서울에 살고 있다는 것조차 아무도 모른다."
일제강점기에 독일 신문 알게마이네 차이퉁 기자가 순종을 인터뷰한 기사의 마지막 문장이다. 1924년 5월 3일자 '오늘의 서울, 황제를 만나다'라는 제목의 기사다. 연합뉴스가 독일 뷔르츠부르크대(University Wuerzburg) 중국학과의 고혜련 초빙교수(Prof. Heyryun KOH)를 통해 입수한 내용이다.
독일 기자는 순종의 첫인상을 이렇게 묘사했다. "80세 정도의 깡마르고 햇빛을 보지 않은 얼굴의 노인이었다. 황제는 그저 아편을 피우거나 정원을 가꾸는 일로 소일하고 있다. 그는 가족만 남았고, 한국 정치의 비극적 인물이다"
기자의 추측과 달리 당시 순종은 50세에 불과했다. 기사에서는 계속 순종이 무기력한 인물로 표현됐다. "어리석은 노인은 궁전(창덕궁) 안의 딱딱하고 불편한 권좌에 앉아있고, 그 방은 양탄자가 있고 중국 도자기로 장식돼 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수염을 만지면서 그의 힘없는 눈이 나를 주시했다. 황제는 너무 말랐는데, 마치 해골을 보는 것처럼 혹은 아편을 피우는 사람한테서 볼 수 있는 상태였다"
이 기자는 일제 만행의 역사를 알고 있었다. 이 때문인지 기사의 맥락에서는 한국에 대한 동정심도 읽혔다. "그(순종)를 보니 1898년 10월 밤의 기억이 내 머리를 스친다. 서울의 민중봉기 때문에 일본은 끔찍하게 그들을 탄압했다. 미친 군대들은 고종 황제의 궁을 침입해 명성황후가 자고 있는 방까지 와서 궁녀들을 죽이고, 황후를 처참하게 때린 후 석유를 붓고 살아있는 채 불에 태워 죽였다. 같은 운명에 놓일 뻔한 황제는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망쳐서 살아남았다. 그 후에 불행한 왕조는 고난의 길뿐이었다"
명성황후는 일본 낭인에 의해 시해된 뒤 불에 태워졌다는 기록들은 있었으나, 독일 기자는 명성황후가 산 채로 불에 탔다고 적은 점은 특이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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