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수(52·가명) 씨는 언젠가부터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뼈마디도 쑤시고 소변 보기도 시원치 않았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우울증과 건망증 증세까지 보였다.
"몸이 예전같지 않네!" 흐르는 세월만 탓했다. 그러던 어느날 의사 친구와 만나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다, 근래의 몸상태를 털어 놓았다. 친구의 반응이 엉뚱했다.
"야, 그거 갱년기 증상하고 비슷한데. 병원에 와서 피 검사 한 번 받아봐라!"
"이게 무슨 소리? 남자한테 갱년기라니?"
최석환 경북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는 "20대에 가장 높게 올랐던 남성호르몬이 30대 이후 매년 조금씩 감소하기 시작하는데 개인별로 차이가 있으며, 남성호르몬 감소가 심한 경우 신체에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면서 "우리가 보통 나이 탓, 계절 탓을 하기 쉬운 우울감·무력감·피로감 등이 40대 이후 생기기 시작한다면 남성갱년기를 의심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남성호르몬이 줄어든다?
여성의 경우 대체로 40대 후반부터 50대에 여성호르몬이 급격히 감소한다. 이 때문에 생식기능이 떨어지고 폐경이 오면서 안면홍조나 불면증과 같은 전형적인 갱년기 증상을 보인다. 반면에 남성호르몬은 서서히 줄어들 뿐만 아니라 개인차가 심하고 감소 시기도 일정하지 않다. 갱년기의 전형적인 증상이 잘 나타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남성갱년기증후군이 드물다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30대부터 서서히 줄어든다. 40세 이후에는 매년 0.4~2.0%씩 줄어 70대에는 30대의 절반, 80대는 3분의 1 수준으로 감소한다. 과거 남성의 평균 수명이 50~60대 이던 시절에 남성갱년기라는 말이 생소했지만, 100세 시대에는 남성갱년기는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닌 셈이다.
남성갱년기증후군의 유병율은 작게는 2.1% (3천200명 대상, European Male Aging Study)에서 많게는 38.7% (2천162명 대상, Hypogonadism in Male Study)로 비교적 다양하게 보고되고 있다. 부산대병원에서 2013년 40세 이상 남성 534명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는 25.6%에서 남성갱년기 증후군으로 진단됐다. 종합해보면 남성갱년기증후군 유병율은 발기부전 못지않게 비교적 높은 편이다.
최 교수는 "혈액검사에서 남성호르몬 저하가 확인되고 남성호르몬 저하와 관련된 증상이 존재한다면 남성갱년기증후군으로 진단이 가능하다"면서 "일반적으로 테스토스테론이 350ng/dl이상이면 정상으로 진단하고, 230ng/dl 미만은 치료가 필요하며 230~350ng/dl 인 경우에는 증상여부에 따라 치료를 결정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진행한다
남성갱년기를 쉽게 생각해선 안 되는 이유는 그에 따른 합병증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방치할 경우 남성호르몬 감소에 따른 체지방 증가로 당뇨나 고혈압, 심혈관계 질환 같은 대사상 질환이 야기될 수 있다. 게다가 골다공증이 심화하면서 골절 발생 위험이 크며, 신경학적으로는 수면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발기부전과 전립성비대증이 찾아올 수도 있다.
문제는 여성과 달리 그 증상이 본인도 모르는 사이 서서히 진행한다는 것이다. 남성갱년기는 과거 젊은 시절 본인의 모습과 현재 상태를 세심하게 비교해 보아야만 그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성욕감퇴, 발기력 저하와 같은 성기능 변화가 가장 대표적인 증상이다. 그러나 성기능 이외에도 신체의 많은 부분이 남성호르몬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남성호르몬 저하는 근육량과 근력을 약화시켜 전신 무력감을 일으키고, 지방세포를 형성하는 호르몬 분비를 촉진시켜 배가 나오고 가슴이 커지게 한다. 최근 중·노년 남성들의 골다공증으로 인한 골절 발생률이 여성을 앞지르고 있는 것 또한 남성갱년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호르몬 치료, 부작용에 주의하라
남성갱년기 치료는 부족한 남성호르몬을 보충하는 방법으로 진행한다. 경구제는 남성호르몬을 약의 형태로 복용하는 방법으로 최근에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다. 단점은 하루 2회 이상 복용해야 하며 소화불량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3, 4주마다 근육에 주사하는 주사제는 오래 유지된다는 점에서 효과적인 반면에 경구제처럼 생리적 용량보다 비정상적으로 높은 테스토스테론 농도를 만들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주사의 불편함이나 소화불량을 일으키지 않는 바르는 남성호르몬인 경피제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과용할 경우 과민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최 교수는 "남성호르몬 보충요법은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하므로 치료 초기에는 반감기가 짧은 먹는 약 혹은 몸에 바르는 겔 유형의 치료제로 시작한 후, 부작용 등의 위험이 없는 환자에게는 작용기간이 긴 주사제로의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남성호르몬 치료를 피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전립선암의 가능성이 높거나 현재 전립선암이 있는 환자는 치료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물론 치료가 잘 되고 있는 전립선비대증 환자는 남성호르몬 치료를 받는데 문제가 없다.
한편 남성호르몬 보충제를 복용하면 적혈구 생성이 증가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만성폐쇄성 호흡기 질환이나 울혈성 심부전증 환자에게는 혈전증 증가 위험을 가져오게 된다. 따라서 고령자나 심혈관 질환을 가진 사람들은 남성호르몬 보충제 사용에 주의해야 한다.

최 교수는 "남성갱년기증후군은 음주와 흡연, 비만이나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시기가 앞당겨 질 수 있으므로 열량이 높은 보양식을 과식하는 것보다는 필요한 영양소를 고루 섭취하는 것이 좋다. 또한 꾸준한 운동으로 근력을 유지하는 것도 남성갱년기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도움말 최석환 경북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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