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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칼럼]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고

정창룡 논설주간
정창룡 논설주간

"우리나라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미국에 이어 가장 높았다. 올해는 한국과 미국이 공동 1위를 기록할 것이고, 내년은 미국을 앞설 것이다." "1월 이후 주요 산업 활동 및 경제 심리 관련 지표들은 개선된 모습이다. 긍정적 모멘텀이 있다."

청와대와 기획재정부가 최근 경제지표를 두고 내놓은 해석이다. 단서를 달기는 했다. 성장률은 OECD 국가 중 30-50클럽(소득 3만달러 인구 5천만 명 이상) 소속 7개국을 비교해 봤더니 그렇더란다. 긍정적 모멘텀은 1월 생산, 투자, 소매 판매와 2월 고용, 소비자심리지수 등 월별 지표가 반등한 것을 강조한 결과다. 이런 주장대로라면 우리나라 경제는 잘 돌아가고 있다. 미래도 장밋빛이다. 그야말로 기다리기만 하면 될 일이다.

실상도 그럴까. 한국은행의 우리나라 경제성장 전망치는 발표 때마다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1월 3.0%던 것이 4월 2.9%, 7월 2.8%, 10월 2.7%로 줄었다. 올해 전망치도 2.6%로 내놓았지만 신뢰도는 바닥을 긴다. 지난해 그랬듯 올해도 장담할 수 없다.

무디스는 올해 한국 성장률을 2.1%로 잡았다. 전 기관을 통틀어 가장 비관적이다. 한국 경제를 어둡게 보는 이유는 간단하다. 투자 부진에다 수출 악화, 고용 위축이 겹쳐 있다고 했다.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무디스의 판단은 맞아떨어진다. 한국 경제의 견인차인 수출이 3개월 계속 감소했다. 그나마 버팀목 역할을 하던 반도체 수출액은 24.8%나 줄었다. 고용 지표는 발표 때마다 최악이라는 꼬리말이 붙어 다닌다. 올 1월 실업자 수는 122만4천 명으로 1월 기준 2000년 이후 19년 만에 가장 많았다. 50대 가구주의 가처분소득은 10년 만에 최대로 감소했다. 30·40 세대 취업자 수는 지난달 전년 대비 30대는 11만5천 명, 40대는 12만8천 명 줄었다. 2월 백화점 매출액과 할인점 매출액은 각각 7.7%, 10.8% 고꾸라졌다.

소득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못사는 사람들은 더 못살고, 잘사는 사람들은 더 잘살게 됐다. 지난해 4분기 소득 하위 20%와 상위 20%의 소득 격차가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3년 이후 가장 크게 벌어졌다. 국민들의 유일한 노후 보장 수단인 국민연금은 지난해 원금 5조9천억원을 까먹었다. 2016년 3조원이 넘는 흑자를 냈던 건강보험은 지난해 1천778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요율을 더 올리지 않으면 탄탄하던 기금 고갈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탈원전 직격탄을 맞은 한국수력원자력과 발전사 역시 줄줄이 적자로 돌아섰다. 국민들 호주머니는 가벼워졌고 더 가벼워질 일만 남았다. 이런데 경제가 긍정적이라 한들 믿을 국민은 없다. 경제 현장은 매일이 전쟁터다.

국민은 전쟁터에 던져두고 정부가 들춰 보고 싶은 통계 수치만 들먹이며 남 탓을 한다면 그것은 확증 편향이다. 내 생각이나 신념만 옳다고 여기려는 잘못된 확신은 국민뿐만 아니라 정권도 벼랑 끝으로 내 몬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긍정과 부정 평가가 역전됐다. 국민들은 경제를 가장 큰 이유로 지목했다. 이는 정부가 확증 편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문이다.

대통령은 국가라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다. 코드에 맞는 악기만 듣고 지휘하려 들면 불협화음이 생기고, 연주는 엉망이 된다. 지금 정부가 그런 모양새다. 연주가 엉망이 되면 이는 연주자 잘못이 아니고 지휘자의 탓이다. 문 대통령이 꼭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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