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드로 보티첼리, '봄', 203x314cm, 패널 위 템페라, 1478~1482년 사이에 제작,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예년보다 빨리 봄이 왔다. 머지않아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눈처럼 흩날릴 것이다. 꽃비를 맞으면 아무리 목석같은 사람이라도 낭만적인 감성으로 촉촉이 젖어버리게 된다. 봄의 전령은 누가 뭐래도 꽃이다.
전기 피렌체 르네상스의 위대한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1445~1510)의 '봄'이야말로 꽃으로 넘쳐나는 그림이다. 그림 상단에는 오렌지 나무와 월계수에서 활짝 핀 꽃들이, 하단에는 세심하게 디테일을 살린 약 500여 종의 꽃들이 나타나 있다. 봄의 알레고리로 가득 찬 이 그림의 제목은 화가가 붙인 것이 아니다. 후일 '위대한 이탈리아 예술가 열전'(1550)을 저술한 조르지오 바사리가 'La primavera', 즉 '봄'으로 붙였다.
3m가 넘는 넓이의 그림 속 인물들은 등신대에 가깝다. 중앙의 비너스 좌측엔 머큐리와 삼미신(三美神), 그리고 셋 중 하나를 향해 화살을 겨누고 있는 비너스의 아들 큐피드가 보이고, 우측엔 꽃들을 뿌리는 봄의 여신 플로라, 땅의 님프 클로리스와 연인인 서풍(西風)의 신 제피로스가 차례로 보인다. 이 섬세하고 화려한 그림에서 봄바람에 하늘거리는 인물들의 옷자락을 자세히 보노라면, 바람의 방향이 각기 다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신비스러운 분위기로 충만한 이 그림에 대한 해석은 지금까지도 분분하다. 먼저 바사리는 고대 로마의 달력으로 봄 석 달에 중점을 두었다. 그림 맨 우측, 3월의 신 제피로스의 날개를 시작으로 4월의 신인 비너스를 거쳐 5월의 신 머큐리로 연결된다. 단순히 봄 석 달만을 상징하기엔 나머지 인물들의 역할이 궁금하다.
무엇보다 사랑과 미, 풍요의 여신 비너스의 모습이 이상하지 않은가? 아이를 잉태한 비너스는 기독교 도상에서의 성모 마리아와 흡사하다. 당시 피렌체에서는 메디치 가문의 후원으로 플라톤 사상을 토대로 이집트나 소아시아의 신비주의 철학이 합쳐진 신플라톤주의 연구가 성행했다. 신플라톤주의자들이 높이 평가했던 선묘 회화의 대가 보티첼리는 천상의 비너스가 신성한 사랑의 근원으로서 성모 마리아를 대신할 수 있다는 신념을 그림에 반영했다. 요컨대, 이 그림에서 비너스는 육체적인 사랑을 의미하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여신인 동시에 영적인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그리스도교 성모의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
1980년대에 이 그림을 해석한 두 연구가 발표되었다. 그림의 우측을 보면, 볼에 잔뜩 바람을 머금은 푸른색 몸의 제피로스가 꽃을 입에 문 채 자신을 뒤돌아보는 클로리스를 꽉 붙잡고 있고, 클로리스는 꽃으로 장식된 옷을 입고 당당히 걸어가는 플로라에게 도움을 청하듯 바짝 붙어있다. 한 연구자는 플로라(Flora)의 그리스식 이름인 클로리스(Chloris)에 주목한다. 그는 봄의 여신 플로라와 땅의 님프 클로리스를 언어적 유희를 통해 동일시함으로써 봄을 정지한 시간이 아니라 순차적으로 변화하는 계절의 흐름, 즉 봄이 다가오고 있음으로 해석한다.
나머지 한 연구자는 피렌체에 초점을 맞춘다. 머큐리는 상업과 교통의 신인 동시에 의학의 신이다. 교역과 금융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아 피렌체 르네상스와 인본주의를 일으킨 메디치(Medici) 가문의 성에는 의학(medicine)이란 단어의 접두사가 포함돼 있다. 또한 피렌체의 다른 이름인 플로렌스(Florence)에는 봄의 여신 플로라의 뜻이 담겨 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봄은 꽃으로 충만한 도시 피렌체와 메디치 가문의 영광을 노래하는 다분히 정치적 선동의 목적을 띠고 있다. 인문학자들의 견해와 메디치 가문의 정치적 의도를 예술적으로 종합한 '봄'은 미술이 자연의 모방(mimesis)이라는 차원에서 벗어나 철학적 세계를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귀족적이고 아름답지만 이 그림에 깔린 멜랑콜리한 분위기는 감출 수 없다. 그림 전면을 흐르는 바람은 사후의 영광을 상징하는 듯하다. 어쩌면 비너스의 모델인, 당대 뭇 예술가들의 뮤즈였던 시모네타 베스푸치의 요절에 대한 애도의 의미가 깔렸을 수도 있고, 활동할 당시의 명성에 비해 종교적・정치적인 사건에 휘말려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자신의 미래를 예측한 화가의 비전일지도 모른다.
박소영(전시기획자, PK Art & Media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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