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영평의 귀촌한담] 산골 나물이야기

전영평 대구대 명예교수
전영평 대구대 명예교수

봄은 나물의 계절이다. 초봄부터 늦가을까지 산골에는 도처에 나물 풍년이다. 불현듯 우리 동네엔 무슨 나물들이 있을까 궁금하다. 학계마을 할머니들과 나물 종류 세어보기 공부를 해본다.

할머니들은 눈을 반짝이며 무릎을 당기신다. 크게 덤불나물, 나무나물, 산나물, 들나물이 있단다. 덤불나물에는 다래순, 찔레순이 있고, 나무나물에는 가죽잎, 오가피잎, 엄나무잎, 뽕잎, 재피잎, 두릅, 들미순이 있다. 산나물로는 취나물, 불초, 곰취, 곤달비, 미역초, 신부쟁이, 고무이, 수리취, 모싯대, 음바구, 작두삭, 삽초삭이 있다. 들나물에는 머위, 냉이, 쑥, 달래, 지부, 미나리, 고구마순, 고비, 아주까리, 돌나물, 방풍, 대나물, 도라지 등이 있다 하신다. 세어보니 마흔 종류가 넘는다.

우리 마을에 이렇게도 많은 나물이 있다는 사실에 할머니들도 사뭇 놀라시며 재미있어 하신다. 할머니들과 모처럼 공부하면서 노는 이런 분위기가 나는 참 좋다. 들에는 달래, 머위, 쑥이 한창이다. 같은 나물이라도 산에서 나는 것이 훨씬 향도 좋고 맛도 좋다. 마을회관서 점심식사 때 밥상에 오르는 가장 흔한 반찬은 단연 나물이다. 할머니들은 나물 반찬이 참 맛있다고 하시지만, 도시 음식에 익숙한 나는 나물 반찬에 잘 적응되지 않았다. 이런 나에게도 봄 마중 달래, 냉이, 머위, 두릅순은 입맛을 돋운다. 살짝 데친 엄나무순은 정신 줄을 놓을 정도로 맛이 좋다. 귀촌의 식도락은 나물로 충분할 수도 있지만, 식사가 끝나면 인생 여정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즐거움이 그 안에 있다. 의롭지 않게 부귀를 누림은 나에겐 뜬구름 같도다!' 논어 술이편에 나오는 귀한 말씀으로 위안과 반성의 기회를 삼는다.

오늘은 나물 숫자가 많아서 귀촌한담을 신나게 썼다. 봄처녀 나물 캐듯이! 기후변화로 냉이도 쑥도 본래의 향을 잃었고 미세먼지가 자욱한 날도 많아 슬프다. 하지만 설중매가 빨간 꽃잎을 터트리는 봄, 그 봄을 오늘은 잠시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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