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모두에게 평범한 기적을 위해

이상훈 대구 중부소방서장

이상훈 대구 중부소방서장
이상훈 대구 중부소방서장

2003년에 개봉한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에서 주인공 브루스는 신에게서 전지전능한 힘을 7일간 부여받는다. 브루스가 본인의 힘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커피를 양쪽으로 가르는 장면이 나온다. '모세의 기적'을 패러디한 것이다.

큰 사고가 생길 때마다 영화 속 그 장면이 떠오른다. 전지전능한 힘을 통해서라도 '모세의 기적'을 만들어 신속하게 현장에 도착한다면 피해를 조금이라도 더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다급한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촌각을 다투는 화재와 구조구급 현장에서 소방차의 도착 시각에 따라 인명과 재산 피해의 규모는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대형 사고가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긴급차량의 출동에 걸리는 시간이 '모세의 기적' '골든타임'이라는 단어와 함께 이슈가 되는 이유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전국의 긴급출동 건수는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대구에서만 2017년 15만8천91건, 지난해 17만5천440건으로 최근 2년 사이 약 10% 정도 증가했다.

출동 건수가 늘어난 만큼 소방관들이 사고 지점에 원활히 진입하는 데 애를 먹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골목길 빼곡하게 늘어선 불법 주정차 차량들을 볼 때마다 걱정이 앞설 정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긴급차량 양보 의무에 관한 법률'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개정 소방기본법은 모든 차와 사람이 긴급출동을 하는 소방자동차에 해서는 안 될 위반 행위를 명시하고 있다. 한정적이고 도의적이었던 양보 사항이 점점 더 명확하고 구체적인 의무 사항으로 법제화됐다. 그 밖에 소방자동차의 긴급출동 관련 과태료 부과도 강화되는 추세다.

이런 분위기 변화에 소방대원들이 거는 기대도 크다. 시민들이 조금 더 양보를 해 줘 골든타임을 몇 분이라도 더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다.

물론 소방 당국의 책임도 있다. 소방서에서도 시민들에게 좀 더 친숙하게 '길 터주기'를 홍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소방서에 체험교육을 받으러 오는 시민들이 긴급차량 양보 방법에 대해 묻는 일도 꽤 많다. 긴급차량이 지나갈 때 양보해 주고 싶지만 어떻게 양보해야 하는지 잘 몰라서 비켜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 번쯤 운전해 본 운전자라면 어느 정도 그 대답에 공감할 것이다.

이 때문에 최근 보다 적극적이고 다양한 홍보 방법을 계획하고 있다. 소방안전교육이나 캠페인은 물론, 쉽게 이해하고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소방차 길 터주기' 사진물과 동영상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홍보할 예정이다. '소방차 동승 체험'도 계획 중이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듯이 실제로 차량에 탑승해 어려운 출동 상황을 짧게나마 경험해 본다면 양보 의무에 대해 한층 더 강한 실천 의지가 생길 것이다.

영화 속 브루스처럼 커피를 양쪽으로 가르듯 복잡한 도로를 손쉽게 가를 수는 없다. 하지만 시민의 힘이 합쳐진다면 '모세의 기적'은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는 일이다. 긴급출동 차량에 대한 양보운전은 이웃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지름길이다. 이런 양보가 특별한 사례로 언론에 보도될 것이 아니라 언제든 평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이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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