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애견법정 Q&A] 음주 진료·의료사고…말 못하는 환자라고 너무하개

우리 집 강아지가 동물병원에서 치료중 죽었다면 누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할까?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가정이 늘어나는 만큼 관련 사고도 끊임없이 발생한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매년 수백여 건(지난해 400여 건)의 동물병원 의료사고 피해가 접수됐다. 예전에는 동물을 물건과 마찬가지로 취급해 의료사고가 발생하더라도 그에 대한 처벌 기준이나 위자료가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동물의 사망 사고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반려동물도 가족의 일원으로 여기면서 법원도 의료사고에 대한 형량을 높이는 추세이다. '애견법정' 에서는 실제로 발생한 동물 의료사고에 대한 처벌 기준을 기존 판례나 전문가의 소견으로 알아본다.

▶음주의심 상태에서 진료한 수의사,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지은 씨네 반려견 '누렁이'는 16살 된 노령견이다. 십 년 넘게 함께 살았으니 누렁이는 피붙이 같은 가족이다. 그런 누렁이가 나이가 들어 시름시름 앓았는데 동물병원에서는 자궁축농증 증세라고 했다. 누렁이는 곧바로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고 누렁이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문제는 생각지도 못한 데서 발생했다.

수술 붕대를 푸는 날이었다. 누렁이 소독을 위해 동물병원을 방문했는데 수의사에게서 술 냄새가 심하게 났다. 수의사는 지은 씨에게 누렁이를 잘 붙들고 있으라고 하고는 붕대를 쭉 뜯어냈다. 실밥과 굳은 피에 붙어있던 붕대를 풀자 누렁이는 심하게 몸부림쳤다. 그 위에 분무기에 담긴 소독약을 뿌리자 누렁이는 신음을 내며 경기를 일으켰다.

지은 씨는 의료행위는 수의사의 고유 권한이라 생각해 나서지 않고 참았다. 그런데 지은 씨를 더욱 화나게 한 것은 수의사의 태도였다. 수의사는 누렁이가 수술 부위를 핥지 못하도록 목에 넥카라를 씌웠다. 얼핏 봐도 다른 강아지의 털이 듬성듬성 묻어있는 재활용품이었다. 수의사는 넥카라가 중고품이라고 인정하면서도 1만2천원을 청구했다. 지은 씨가 새것으로 달라고 요구하자 상스러운 욕을 했다. 수의사가 아직까지 술에 취한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해 지은 씨는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출동했지만 수의사가 동의하지 않는 한 음주측정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수의사가 욕을 한 부분에 대해서도 모욕죄로 고소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수술 후 곧바로 사망한 마루, 사과도 안 하면서 수술비도 지불하라?

수경(가명) 씨네 애완견 '마루'는 애교가 많고 얌전한 막내딸 같은 강아지였다. 잠시도 떼어놓을 수 없어 가족여행에도 매번 데리고 다녔다. 수경씨 가족은 마루가 4살이 되던 해 중성화 수술을 시켜주기로 했다. 수의사는 중성화 수술이 흔하디 흔한거라 수술 후 마루가 더 건강해질 거라고 가족을 안심시켰다.

마루는 수술 전날 심한 설사를 했다. 가끔 있던 일이었지만 수술을 앞두고 가족은 불안해졌고 동물병원에도 사실을 알렸다. 병원에서는 마루의 행동에 특별한 이상이 없어 수술을 진행해도 좋다고 말했다. 수의사는 예정대로 수술을 진행했다. 수술이 끝났다는 연락을 받은 가족은 곧바로 동물병원을 찾았다. 아직까지 마취에서 덜 깬 마루는 수경 씨를 알아보지 못했다. 수의사는 수액을 맞는데 2시간 정도 걸린다고 해 가족은 밖에 나와 대기했다.

1시간 정도 지났을까? 동물병원으로부터 빨리 병원으로 들어오라는 연락이 왔다. 수의사는 마루가 쇼크사로 죽었으며 수술비는 계산하고 데려가라고 했다. 건강한 마루를 만날 생각에 동물병원을 찾은 가족의 눈앞에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다.

더욱 당황스러운 건 별일 아니라는 식의 동물병원 반응이었다. 의료사고에 대한 인정도 사과도 없었다. 수경씨 가족은 문제 삼지 않을 테니 최소한 사과라도 하라고 종용했지만 동물병원 측은 수술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사과할 부분이 없다고 말했다. 마루의 가족은 해당 사실을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했지만 동물 병원 측은 내용을 발견하면 명예 훼손죄로 고소하겠다고 했다.

◆법적 검토

먼저 '누렁이' 건의 경우, 수의사법상 음주 진료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다. 의료행위 전 위생에 대한 기준도 따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 다만 대한수의사회 윤리지침에는 '품위손상' 에 해당하는 행위가 있었을 때 윤리위원회를 거쳐 처벌한다는 내용만 있다. 음주 진료가 이뤄졌다면 이에 해당될 수 있다. 음주 진료 여부는 경찰의 측정 결과 또는 본인의 자백이 있어야만 입증된다. '품위손상' 진료를 진행한 수의사는 윤리위원회에 회부되어 징계가 결정된다. 음주 진료와 관련해 대구수의사회 소속 한 병원장은 "진료실에서는 진료를 위해 알코올을 사용하는 일이 잦기 때문에 수의사가 실제 술을 마신 것이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위생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없지만 시술 후 강아지 상태가 나빠졌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다면 법률적 처벌이 가능하다. 수의사법 제32조 제2항 제6호는 '과잉진료행위나 그 밖에 동물병원 운영과 관련된 행위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행위를 하였을 때' 농식품부 장관이 수의사에게 1년 이내 기간 면허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수의사법 시행령 제20조의2 제2호, 동법 시행규칙 제23조를 보면 '1. 소독 등 병원 내 감염을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시술하여 질병이 악화하게 하는 행위, 2. 예후가 불명확한 수술 및 처치 등을 할 때 그 위험성 및 비용을 알리지 아니하고 이를 하는 행위' 등을 열거하고 있다.

'마루'는 사망했다고 하더라도 '수술'이 진행된 이상 '수술비' 채무는 부담해야 한다. 과잉진료진료 행위나 소독 등 병원 내 감염을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을 입증할 수 있다면 강아지 사망에 대한 손해배상은 별도로 청구할 수 있다. 동물권연구단체 피앤알 박지윤 변호사는 "통상 수의사들 간 아무리 의료과실이 있다 하더라도 사과를 하면 과실을 인정한다고 생각하여 섣불리 사과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사과 여부와 관계없이 의료과실 유무는 법리적으로 판단되는데 일반인 입장에서 의료과실을 입증하기는 다소 어렵다."는 것이 현실이다.

만약 수술 후 반려동물이 병원에서 사망했을 때는 수술 동의서 유무에 따라 책임 소지가 갈린다. 수의사가 반려동물 가족에게 수술의 부작용을 설명하거나 수술 동의서를 받았다면 문제가 생기더라도 면책이 될 수 있다.

※법률 자문. 동물권연구단체 피앤알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