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늦은 시간 죄송하지만 이번 녹색어머니회 순서가 어떻게 되죠?" "선생님, 고향이 어디세요? 거기 괜찮던데 같이 가실래요?" "이번 시험, 우리 아이가 실수한건데 당장 점수 올려주세요."
죄송하다는 말을 붙이면 괜찮겠지싶어, 혹은 조금이라도 친분을 쌓고자 교사에게 이런말을 건넨다면 큰 문제가 없는걸까. 하지만 이와 같은 행위는 모두 관련법상 교육 활동 침해 행위에 해당된다.
교육부가 최근 교권 보호와 관련된 지원을 대폭 강화했다. 학생이나 학부모가 교사의 교권 및 사생활을 침해하는 경우와 대응 절차를 담은 '교육활동 보호 지침서'를 전국 시·도교육청과 일선 학교에 배포한 것이다.
대구시교육청도 내달 기존 교원 치유지원센터 기능을 확대한 '교육권보호센터'를 개설하는 등 교권 보호를 위한 지원을 늘리고 있다.
◆늦은 시간 민원·사적 연락 'NO'
교육부가 이번에 배포한 교육활동 보호 지침서 개정본에는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들에게 자주 행하는 교육 활동·사생활 침해 행위가 구체적으로 담긴 홍보 유인물이 새롭게 포함됐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초등학교 저학년용 유인물에는 ▷선생님의 생김새나 옷차림을 놀리는 경우 ▷선생님에 대한 거짓 이야기를 여러 친구에게 할 경우에 학생과 선생의 관계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및 중·고등학생용 자료에는 ▷교사에 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행위 ▷교사에게 욕설하는 행위 ▷교사의 신체 특정 부위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거나, 음란 영상·사진 등을 교사의 핸드폰으로 전송하는 행위 등이 교육 활동 침해 행위로 명시됐다.
특히 학부모용 자료에는 '휴대전화로 인한 사생활 침해 행위'가 사례별로 담겼다.
여기에는 ▷밤늦은 시간 단순 민원 ▷교육 활동과 무관한 사적인 연락 ▷학교 밖 상담 요구 ▷교사에 대한 온라인 명예훼손 등이 대표적인 교육 활동 침해 사례로 꼽혔다.
또한 학부모들이 불쑥 학교를 찾아가거나 절차를 지키지 않고 민원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학교 방문 및 민원 제기 절차도 자료에 담겼다.
지침서 개정본에는 교육 활동 침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처리하는 절차도 새로 정리돼 수록됐다. 예를 들어 학생이 교권을 침해했을 경우 학교장이 피해 교원을 즉각 보호 조치하도록 하고, 학교교권보호위원회 심의를 거쳐 선도위원회를 여는 절차 등이 단계별로 제시됐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활동 침해 행위의 법적 개념과 대법원 판례, 침해 사안 처리 절차와 관련자 조치, 교육활동 침해 예방 자료 등을 새롭게 추가했다"며 "교육활동 침해 피해 교원들을 법률적·제도적으로 보호하고 상담, 치유프로그램을 통해 업무에 조기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데 필요한 내용으로 제작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교육부는 각 시·도 교육청이 교권 피해 교원 심리상담을 위해 운영하는 '교원치유지원센터'에 전문인력과 활동을 보강하기로 했다. 관련 예산을 지난해 19억4천만원에서 올해 31억3천400만원으로 늘렸다.
정인순 교육부 학교혁신정책관은 "이번 교육활동 보호 지침서 개정본 보급이 교원을 교육활동 침해로부터 보호하고, 교육활동을 중심으로 상호 존중할 수 있는 학교문화를 조성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며 "또한 신학기 학교생활 조기 적응이 요구되는 유치원, 초등학교 저학년 등의 학부모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교육청과 학교별로 자체 지침을 마련해 적극 안내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교육권보호센터 5월 개설
대구지역의 교권 침해 사례는 2017년 110건에서 지난해 1학기에만 70건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교권침해 유형은 학생에 의한 모욕이나 명예훼손이 56건으로 가장 많았고,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 6건, 직접적인 상해나 폭행이 4건 등으로 집계됐다.
이에 대구시교육청은 교권 보호를 위한 지원을 대폭 늘리고 있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교육권보호센터' 개설을 앞두고 있다. 이는 기존에 운영하던 교원 치유지원센터 '에듀힐링센터-휴(休)'의 기능에 교육권 갈등조정센터 역할을 포함한 것으로, 오는 5월 중 대구시교육연수원에 문을 열 전망이다.
교육권보호센터는 개인 및 집단 상담실 등 시설을 갖추고, 전문상담가가 상주해 다양한 상담·교육 활동을 한다. 또 전담변호사를 배치해 교육권 갈등 사안에 대한 중재 업무를 맡도록 하고 법률 교육과 상담, 법률 지원 등의 서비스도 제공한다.
이밖에 관련 경험이 풍부한 퇴직 교원을 배치함으로써 학교 현장의 갈등 사안 초기 단계부터 교육적으로 접근해 문제가 해결되도록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대구시교육청 관계자는 "전국에서 처음 문을 여는 교육권보호센터를 통해 교사들이 교권 침해 불안에서 벗어나 학생과 학부모 모두가 만족하는 미래 교육을 실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지난해 말부터는 '교원 안심번호'도 제공하고 있다. 교원 개인의 휴대전화번호로 근무시간 외에 수신되는 ▷교육활동과 무관한 메시지 ▷개인 SNS 노출 등으로 인한 교권 침해와 사생활 유출로 교원들의 피로감이 커지고 있는 데 따라 마련한 것이다.
지난해 500만원의 예산을 들여 안심번호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고, 대구시교육청 소속 공·사립 교원 중 희망자에게 안심번호(가상번호)를 제공했다.
안심번호 희망 교원은 교원인증을 거쳐 0505로 시작되는 가상번호를 발급받고, 학부모는 이 번호를 이용해 교사와 전화 통화 및 문자를 주고받을 수 있다.
한 교사는 "카카오톡 등 개인 휴대전화번호를 통해 개인 사생활이 노출될 수 있는 SNS를 원천적으로 차단해 업무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대구시교육청 관계자는 "교권 보호는 교육의 질과도 이어진다"며 "교권 보호뿐만 아니라 학생 인권 등 전반적인 교육권 보호를 위해 제도를 보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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