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사람과 책을 잇'는 아름다운 지역서점 삼일문고에서 '동시랑 프로그램'이 열렸습니다. 동시랑 만나 가까워지길 바라며 네 번의 다채로운 시간으로 엮은 '동시 붐업 프로젝트'가 시작된 첫날. 김성민 작가가 자신의 책, "브이를 찾습니다"(창비) 동시집 가운데 '오토바이 도넛' 동시를 보여주며 물었어요.
"여기, 숨어 있는 도넛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나는 얼른/ 동그랗고 가운데 구멍 뚫린/ 도넛 두 개를 골라/ 부릉!/ 힘차게 시동을 걸어 놓고/ 다른 녀석들한테 이렇게 외쳤어// 어이, 꽈배기!/ 배배 꼬지만 말고 운전대나 잡으시지// 거기, 찹쌀 도넛!/ 안 떨어지게 찰싹 달라붙으라고// 그런 다음/ 부릉부릉 부르릉!/ 고렇게 할머니 집으로 신나게 달려갔지
숨어 있는 도넛, 무엇일까요
찾으셨나요? 소리 내어 읽으면, 입안에서 톡 튀어나오는 도넛 이름. 그날도 누군가 '고렇게!'라고 외쳤어요. 웃음 방울이 팡팡 터졌고, 사람들 입꼬리가 올라갔지요. 숨어 있는 뭔가를 찾고 나면, 달라진 시간을 맞게 돼요. 숨어 있다는 건 잘 드러나지 않을 뿐 분명 있다는 건데,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없는 듯 여기며 살아가는 시간과 있는 것을 '여기 있구나!' 발견하고 찾아내어 더하며 살아가는 시간은 다를 수밖에요. 문득, 당신이라면 제목의 빈칸을 어떻게 채울지 궁금해집니다. 지금 이 순간, 얼굴 맞대고 대답을 기다린다면, 당신은 둘레 숨은 것들 가운데 무엇을 찾아내실까요?
그날 오후, 시인들과 가까이 마주 앉은 자리에서 우연히, 살아있는 말(馬)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말(馬)은 마음을 움직이는 말(言)에 닿고, 글을 쓰는 사이, 몽골 초원을 내달리던 말(馬)에 이르렀어요. 울란바토르 청년들에게 한글을 가르친 적 있는 이십 대의 나, 태어나 처음으로 말 달리던 날이 떠오른 거지요. 까맣게 잊고 지냈는데, 새삼 얼얼했던 엉덩이 감각까지 와락, 되살아났어요. 주저하다 겨우 말 위에 올라탄 나는, 어느 순간, 말에게 몸을 바짝 붙이고, 바람을 가르며 달리기 시작했지요. 나를 품어주는 듯한 드넓은 하늘과 푸른 땅… 온 세상이 낯설고 새로웠습니다.
마음에게 말 걸기 좋은 봄날
어쩌면 동시란 시인의 말을 타고 빤한 일상을 가르며 또 다른 세상을 만나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삼일문고에서 백민주 시인이 "너 먼저 뛰어내려.// 싫어, 무서워.// 너 먼저 뛰어내려.// 용기 있는 녀석만/ 들을 수 있는 말// -야! 첫눈이다."("첫눈에 대한 보고서"(브로콜리숲) 동시집 가운데 표제작) 동시를 떨리는 목소리로 낭송하는 순간, 이제까지와는 다른 첫눈, 용기 내어 폴폴 뛰어내린 첫눈이 눈앞에 나타난 것처럼요.
첫눈의 '용기' 헤아리다 윤지회 작가를 떠올립니다. 위암 4기 진단을 받고 수술, 항암 투병 중에도 떨리는 손으로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은 그녀. 아프지 않던 때 같으면 3일 만에 완성할 그림을, 두 달에 걸쳐 완성하면서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우주로 간 김땅콩"(사계절) 그림책을 세상에 내놓은 그녀의 놀라운 이야기,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 그녀 덕분에 요즘 부쩍, 일상에 숨은 무엇, 소중한 무엇을 날마다 발견하고 있거든요.(인스타그램에서 '사기병, #sagibyung'을 찾으시면 작가의 항암 그림일기를 만나볼 수 있어요. 낯모르는 이들이 댓글로 줄줄이 달아 놓은 따스한 응원과 격려의 마음도요)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을 '따뜻함으로' 꽃피워 희망, 사랑의 마음 돌보게 하는 그녀의 그림일기가 이 봄날, 당신에게도 가 닿으면 좋겠습니다. 그녀에게로 향하는 우리들의 밝고 환한 마음도 생명 기운 북돋우는 데 커다란 힘이 되어준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좋은 동시랑 노닐며, 내 안의 숨은 마음에게 말 걸기 좋은 봄날, 하루하루 새롭게 하는 '숨은 ___ 찾기' 해보지 않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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