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술을 마실까? 게다가 너무 많이 마셔 몸을 해치고, 사건·사고를 내고,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걸까? 인류는 언제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을까? 자연계에도 술이 존재할까. 유전적으로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은 따로 있는 걸까? 술은 몸에 해롭기만 한 걸까? 인간 외에 다른 동물들도 술을 마실까? 이 책은 술에 관한 의학적 영역을 넘어 우리 삶과 연결해 다양한 이야기를 펼친다.
◇ 미생물·식물·동물의 공진화
알코올은 자연에서 흔히 발견되는 물질이다. 잘 익은 과일에는 당이 많고, 알코올은 특정한 종류의 효모가 당을 발효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발효 과정에서 효모는 과일에 있는 당을 먹고 알코올을 만들어낸다. 알코올은 익은 과일을 두고 경쟁하는 다른 세균들을 없애는데 유용하다. 효모 입장에서 볼 때 항균 작용이 있는 알코올이 세균들을 물리치는 방패막이가 되어주는 것이다.
새, 곤충, 여러 종류의 원숭이, 대형 유인원 등이 당도 높고 영양가 있는 과일을 먹고 산다. 이 동물들은 과일을 먹으면서 그 안에 포함된 소량의 알코올을 자연스럽게 섭취한다. 동물들은 탄수화물(당)이 풍부한 과일을 통해 영양소를 얻고, 여기저기에 배변함으로써 식물의 씨를 멀리 퍼뜨린다. 미생물, 식물, 동물, 모든 참여자가 서로를 의존하며 번식과 생활사를 이어나가는 것이다. 그러니 과일에서 만들어지는 알코올에는 미생물과 식물, 동물의 공진화가 담겨 있다. 공진화란 둘 이상의 종이 상대 종의 진화에 상호 영향을 주며 진화하는 것을 말한다.
◇ 술에 끌리는 건 진화적 유산
지구에 효모가 나타난 것은 약 1억 2천만 년 전이다. 비슷한 시기에 현화식물(꽃을 생식기관으로 가지고 밑씨가 씨방 안에 들어 있는 식물군)이 등장해 탄수화물이 풍부한 과일을 맺기 시작했다.
과일을 먹는 동물들은 멀리서도 알코올 냄새를 감지하는 후각을 진화시켰고, 무성한 푸른 잎들 사이에서 노랗거나 붉게 변한, 익은 열매를 알아보는 시각능력도 갖추게 되었다.
지은이는 알코올이 함유된 익은 과일을 먹는 동물이나 영장류의 섭식이 오래전 인간의 조상에게 그대로 이어졌고, 따라서 인간이 술에 끌리는 것은 생물학적, 진화적 유산이라고 말한다. 알코올 섭취가 약 1억 년에 걸쳐온 생물들 간의 상호작용 결과라는 것이다.
◇ 식물과 동물, 인간의 생활사
이 책은 알코올을 매개로 벌어지는 생물들의 상호작용을 설명하면서 자연스럽게 발효의 과학과 식물의 생활사를 이야기한다. 과일을 먹는 초파리, 나무두더지, 과일박쥐, 유인원 등 다양한 동물들의 생활사를 거쳐 인간의 양조 문화와 알코올 중독, 알코올이 인체에 미치는 생리적 영향까지 다루는 것이다. 한마디로 식물학, 생태학, 생리학, 비교생물학, 진화의학, 인류학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든다고 할 수 있다.
◇ 술 취해 나무에서 떨어진 원숭이
초기 인류는 당과 소량의 알코올이 함유된 잘 익은 과일을 먹으며 주린 배를 채웠다. 그러다가 발효의 과학을 이해하게 됐다. 이제는 맥주, 포도주, 증류주 등 다양한 술을 과하게 마신다.
과일에 포함된 소량의 알코올은 인류에게 영양분이 되었고 안전했다. 하지만 마트에서 다양한 술을 마음껏 구할 수 있게 되면서 알코올은 위험한 물질이 되었다. 잘 익은 과일을 즐겨 먹는 원숭이는 술에 취해 나무에서 떨어지는 일이 없지만, 술을 마음껏 마시게 된 인류는 '길'에서 벗어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술에 취해 나무에서 떨어지는 셈이다. 자연이 허용하는 정도의 알코올은 동물을 해치지 않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술은 여러 가지 이점을 주는 동시에 대가를 요구하는 셈이다.
◇ 술에 얼굴이 쉽게 붉어지는 까닭
성별, 지역, 개인에 따라 알코올 반응은 제각각이다. 특히 중국, 한국, 일본 사람들 중에는 술을 조금만 마셔도 얼굴이 금세 붉어지는 사람들이 많다. 알코올대사에 관여하는 효소는 종류도 다양하고 변종도 많다. 대부분의 동아시아인은 알코올 대사 중간 산물인 독성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를 천천히 분해한다. 반면 서유럽 사람들은 아세트알데히드 분해효소가 빠르게 대사된다. 동아시아인이 소량의 알코올에도 얼굴이 쉽게 붉어지는 이유다.
▷ 지은이 로버트 디들러
듀크대를 졸업하고 케임브리지대에서 동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통합 생물학 교수이자 파나마 스미스소니언 열대연구소 연구원이다. 중국, 인도네시아, 파나마에서 현장 연구를 수행하며 인간과 알코올의 관계에 대한 가설인 '술 취한 원숭이 가설(drunken monkey hypothesis)'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과일을 먹는 영장류와 알코올 섭취의 진화적 기원을 다룬 연구 결과를 다수 발표했다.
256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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