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거리가 '100'으로 넘실댔다. 100년의 봄, 100년의 기억, '100'으로 시작하는 현수막들이 곳곳에서 살랑이며 100번째 3·1절을 알렸다. 텔레비전도 연이어 특집방송을 내보냈고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라는 긴 이름의 대통령직속 위원회는 일찌감치 숫자 '100'과 태극기, 그리고 촛불을 형상화한 엠블럼과 '국민이 지킨 역사, 국민이 이끌 나라'라는 슬로건을 선보이며 분위기를 돋웠다.
지방자치단체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저마다 향토출신 독립운동가의 행적을 소개하며 자기 지역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드러냈다. 마치 100년 전 온 나라가 만세소리로 들끓었듯 이번엔 온 나라가 그날을 기념하고 재현하는 행사 소리로 가득했다. 그리고 100주년답게, 지난 100년의 역사를 대하는 시선도 한층 업그레이드되었다. 3·1운동의 배경이 된 2·8독립선언과 신한청년당의 활동이 100년의 시간을 넘어 다시 회자되었고 빛나는 활약에 비해 그동안 제대로 현창되지 못했던 김마리아, 정정화 등의 여성독립운동가들이 집중적으로 재조명되었다.
그런데 그게 99주년이든 100주년이든 3·1절이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이 특별한 날이라는 건 실상 차이 날 게 없다. 그날은 우리가 살아갈 세상의 기준과 삶의 방식을 처음으로 우리가 정한 날이기 때문이다. 왕의 다스림 없이, 양반의 가르침 없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우리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그것을 선언한 날이기 때문이다. 그날 우리는 우아하고 당당하게 '나는 나답게, 우리는 우리답게' 살 것임을 만방에 천명했다. 그건 불타는 적개심으로 일본을 멸하겠다는 선전포고를 넘어, 왕조의 회복을 향한 유교적 충의와 이념을 넘어, 인류공영의 방법과 당위를 일깨우는 커다란 울림이었고 스스로에 대한 자존과 당당한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민족대표 33인은 모두 우리를 대신하는 우리 중의 한 사람들이었다.
이처럼 그날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시작을 만든 사람들, 거리에 나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친 사람들, 그렇게 우리의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사의 흐름까지 바꾸어 놓은 사람들은 모두 지금의 우리처럼 손만 뻗어도 닿을 만큼 평범한 '그때의 우리들'이었다. 그런 만큼 3·1절 100주년에 대한 기억과 기념이 '100인의 특별한 독립영웅 이야기'처럼 흐른다 해도 나쁠 건 없지만 그것에 더해 온 강토를 덮었던 이름 없는 함성의 주인들도 함께 헤아려야 한다.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완용은 "동포여! 살길이 있는데도 왜 무모하게 죽을 길로만 가려 하느냐?"고 했다. 그리고 당시 조선총독이던 사이토의 관저를 찾아가 '의무교육을 보급하고 토목공사는 농번기를 고려하여 진행할 것, 그리고 단순 시위가담자에겐 관용을 베풀 것 등의 3·1운동에 대한 13가지 대책을 전달했다. 반면 2·8독립선언을 주도한 김마리아는 참혹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너희가 아무리 그래도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내 안에서 빼내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다. '지금의 내가 그때 거기 있었다면 김마리아와 이완용 둘 중 누구의 선택을 따랐을까? 그때의 눈으로 지금의 우리를 돌아보는 노력도 함께 있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우리 만난 지 100일째 날'처럼 3·1절보다, 독립운동보다 '100번째'라는 것에 더 호들갑을 떤다면, 100년 전 우리의 이야기를 지금의 우리와는 관계없는 특별한 사람들의 지난 이야기로만 여긴다면, 그리고 그렇게 세월 가다 보면 언젠가 다시 피 흘리며 만세를 불러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니 내년 3·1절에도 그다음 3·1절에도 한 번씩 잠깐이라도 그날의 우리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 길 끝에서 저 건물 벽까지, 돌아보면 어디에나 '100'이 눈에 띌 만큼 100주년의 '100'으로 분주했던 올 3월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문득 궁금해진다. 지난 한 달 그 '100'들은 우리를 얼마나 바꿔 놓았을까? 희뿌연 미세먼지 속에서 '100'이라는 숫자와 '반민특위가 국론을 분열시켰다'는 기막힘을 뒤로한 채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3월이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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