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새론새평] 말의 품격이 시궁으로 떨어지다

김주영 소설가·객주문학관 명예관장

김주영 소설가
김주영 소설가

정치인·지식인의 막말·욕설·거짓말

사회 흐름 흩트려 끝없는 갈등 촉발

내뱉은 말 다시는 주워담을 수 없어

말의 품위, 일생 동안 지켜야 할 금도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된 병리 현상들은 그 사례를 모두 열거하기 버거울 정도로 많다. 그중에서 가장 심각한 현상 중의 하나는 정치인들과 지식인으로 자처하는 사람들이 밤과 낮을 막론하고 쏟아내는 천박한 막말, 헐뜯기와 비꼬기, 마구잡이식 욕설, 비루한 거짓말들이다. 이처럼 경솔하고 더럽혀진 언어들이 하루가 멀다고 아무런 죄책감 없이 우리들 머리 위에서 춤추고 있다.

정의가 무엇인지 사려 깊게 생각해 볼 것도 없이 걸핏하면 표독스러운 말로 상대를 공격하고, 몰래 녹음하고, 촬영해서 자기 주변의 인물들을 함정으로 빠트리는 것을 오락처럼 즐기며 뽐내고 으스댄다. 그러나 이런 경박한 언행과 행위들은 상대방의 가슴 속에 화살처럼 박혀 오랫동안 아픔의 흔적으로 남아 있게 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분노와 원망이 쌓이는 사회를 만드는 계기가 된다. 값어치 있는 언어가 갖는 화해와 포용의 모습은 어느새 오염되거나 궤멸되고 갈등과 대결의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

우리 사회가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을 만큼 춥고 어두워지자, 우리들의 언행 역시 피가 튈 것처럼 엽기적이거나 거칠어졌다. 자신과 생각이나 이념을 달리한다고 해서 나라의 정치 지도자를 거리낌 없이 천박한 말로 폄훼한다는 것은 지도층에 있다는 사람이 구사할 언어는 결코 아니다. 언행이 경솔하면 설혹 그가 재상의 지위에 있다 하더라도 천한 종이나 다름없다는 옛말도 있다.

말버릇은 대개 어린 시절에 배운다. 성인이 되어서야 터득한다는 것은 구차한 변명이거나 거짓말일 가능성이 있다. 왜 그런 저질스러운 언어를 쓰느냐고 질문하면 사려 깊지 못했던 과거에 저지른 말실수였다고 둘러댄다. 혹은 사석에서 무심코 흘린 말이라고 말끝을 흐리는 사람도 있다. 비겁한 일이다.

이런 막말을 공공연하게 저지른 사람이 한 나라의 정치 일선을 휘젓고 다닌다면 그 당사자의 문제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장래가 절망적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자기 집에서 기르는 짐승에게도 정제하지 않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여서는 안 된다. 그런 마구잡이식 욕설은 한 나라의 사회적 혹은 정치적 흐름을 왜곡해 끝없는 갈등을 촉발시킨다. 나아가서 사회정의는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한 의심을 끝없이 갖게 만든다. 그래서 막말을 일상적으로 내뱉는 사람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그는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들과는 생물학적 차이를 가진 사람은 아닌지 의심스럽게 만든다. 그런 경솔한 막말과 욕설을 내뱉고 있는 장본인은 그것이야말로 효과적인 공격 방법이었다고 의기양양할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영혼이 얼마나 피폐되어 있는지 모르고 있다는 게 개탄스러울 뿐이다.

언어의 품위에는 그 바탕에 사람의 영혼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다. 그래서 말이라 해서 모두 말이 아니라는 핀잔이 가능하다. 해야 할 말은 하지 않고 입에 담지 말아야 할 말만 골라서 지껄이는 사람도 있다.

우리의 삶이 아무리 황폐화되었다 하더라도 모욕적이고 충동적인 막말로 내던져버려도 좋을 만큼 가볍지 않다. 세상을 자기 혼자 살아간다면 막말을 하든 곤두박질을 치든 욕설하든 비꼬든 상관 없으리라. 그러나 이 세상은 혼자 살기엔 너무나 버겁고 또 그렇게 살지 못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말의 품위는 어려서든 늙어서든 일생 동안 지켜나가야 할 금도와 같은 것이다.

앞에 둔 희망보다 지나간 것에 대한 후회가 더 많은 나이가 되면, 필경 지나간 시간에 남의 가슴에 못을 박았던 몇 마디 말이 떠오르게 된다. 그러나 그 험담을 지금 와서 후회하고 가슴을 친다 해도 만회할 길은 어디에도 없다. 쏘아버린 화살이 스스로 방향을 바꾸어 되돌아 왔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어린 손자가 물었다. "할아버지는 전쟁 영웅이었다지요?"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아니다. 나는 그들 영웅들과 같이 싸웠을 뿐이다." 말의 품위와 겸허함이 어디에 있는가를 가르쳐 주는 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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