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과잉 경호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부부 살해는 암살 가능성에 대한 페르디난트의 무신경과 허술한 경호 대책이 초래한 비극이었다. 페르디난트가 살해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사라예보 방문 날짜부터 적당하지 않았다. 6월 28일은 '성 비투스의 날'(St Vitus'day)로, 1389년 이날 코소보 전투에서 세르비아 연합군이 오스만터키에 패배한 이후 '민족 부흥'을 염원하는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에게 가장 성스러운 날이 돼왔다.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이 '수복'할 땅으로 여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합병한 오스트리아-헝가리 황태자가 하필 이날 방문한다는 것은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에게 큰 모욕으로 비쳤다. 세르비아 민족주의 테러단체인 '흑수단'(黑手團)이 이날을 거사(擧事)일로 잡은 이유다. 방문 날짜가 불길하다는 우려가 현지에서 나왔으나 페르디난트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경호 대책도 엉망이었다. 페르디난트 부부가 탄 무개차가 군중이 밀집한 대로를 지나가도록 동선(動線)을 잡아놓고도 도로 양측에 경비병을 배치하지 않았고, 경호대도 대원 대부분을 페르디난트가 처음 도착한 철도역에 머물게 한 채 경호대장만 방문단에 동행했다.

흑수단의 1차 폭탄 암살이 실패한 뒤의 대처는 더 한심했다. 1차 암살을 모면한 뒤 동선을 급히 변경했으나 운전사에게 이를 알리지 않았다. 그 바람에 페르디난트를 태운 차는 처음 동선대로 움직이다 변경된 경로로 급히 우회전해야 했다. 이는 그 주변에서 기다리던 19세의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하늘이 준 기회였다. 그가 발사한 권총탄 한 발은 황태자의 목 정맥을, 또 한 발은 그 아내의 위장 동맥을 끊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구 칠성시장을 방문했을 때 청와대 경호원이 방아쇠에 손가락을 댄 채 기관단총을 노출해 '과잉 경호' 논란이 일고 있다. 문 대통령의 민생 현장 방문 때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는데 하필 문 대통령 지지도가 낮은 대구에서 이런 일이 생긴 것은 대구를 '위험지역'으로 보기 때문이 아니냐는 소리도 나온다. '해프닝'인지 '기획'인지는 청와대만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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