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우내 움츠렸던 산이 새록새록 숨을 쉰다. 꽃샘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 나온 진달래가 곱다 못해 애처롭다. 우리나라 노래나 글에 자주 오르는 꽃이 진달래이다. 무궁화가 우리나라 꽃이지만, 어찌 보면 우리 민족의 얼을 담고 있는 꽃이 진달래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산간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것은 내게 큰 자산이다. 들판의 꽃들과 야산의 식물 효용을 어른들의 어깨너머로 주억거렸다.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곡식 한 알의 소중함도 마음에 담고 살았다. 지금이야 도심 근교의 진달래를 채취한다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지만 예전에는 진달래 철이 되면 종다래끼 들고 산으로 내달렸다.
흙을 파헤치며 냉이를 캐는 것보다 나뭇가지에 나붓나붓 매달린 진달래꽃을 따는 게 훨씬 좋았다. 꽃을 따면서, 꽃을 먹었다. 며칠 동안 진달래에 파묻혀 지내다 보면 집안이 온통 진달래 천지가 된다. 가지 꺾어온 진달래는 항아리와 빈 병에 꽂아 방과 마루, 장독대에까지 널어놓았다. 어머니는 머리를 저으며 "무당집도 아닌데 온 집안에 꽃을 꽂아 두느냐."며 역정을 내었다. 할머니는 수북하게 쌓아놓은 진달래로 술을 담갔다. 입술도 손톱도 푸르딩딩하게 꽃물이 들어 흉측해질 즈음이면 할머니도 한 말씀 하셨다. "참꽃밭에는 문둥이가 숨어있다가 알라들을 잡아간다더라. 이제 참꽃일랑 그만 따오너라."
어린 시절에 배가 고플 만치 가난하지는 않았다. 단지 주전부리가 궁색하다 보니 진달래를 따서 먹었고, 진달래 철이 되니 꽃 따는 것도 하나의 놀이 종류였다. 어렵던 시절에는 양식이 떨어질 즈음에 진달래가 피었다고 한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먹은 꽃이 진달래였다. 먹을 수 있는 진짜 꽃이라서 '참꽃'이라는 이름을 자연스럽게 붙이게 되었다. 비옥한 평지가 아니라 척박하고 외진 땅에 뿌리 박고 자라는 진달래는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의 서러운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문헌에 나오는 진달래 이야기는 대부분이 아릿하다. 중국 촉나라 황제 '두우'는 왕위를 신하에게 뺏겼다. 억울하고 분한 그는 죽은 후에 두견새로 환생했다. 두견새는 귀촉귀촉(歸蜀) 피를 토하면서 울었다. 그 피가 꽃이 되었는데 바로 진달래, 두견화(杜鵑花)인 것이다. 김소월의 '진달래꽃' 역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라는 반어법으로 눈물짓게 한다. 신동엽의 '4월'은 '진달래처럼 민족의 꽃들은 사람들의 가슴마다 되살아' 비극의 현장을 대변한다.
반면에 내 추억 속의 진달래는 즐거운 놀이로 남아 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진달래는 봄을 대표하는 아련한 그리움이다.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고, 다람쥐 쫓던 어린 시절'을 상기할수록 가슴설렌다.
진달래 화전은 삼짇날의 대표적 음식이다. "성종실록"에 '국가에 일이 있으면 그만이나, 일이 없을 때는 재상들이 하루 즐길 수 있는 것도 가하지 않겠는가. 3월 3일과 9월 9일에 노는 것이 어찌 사치함이겠는가'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삼짇날은 궁궐과 민가에서도 화전놀이로 봄을 즐겼다. 화전은 '꽃달임', '꽃지짐'이라고도 한다.
찹쌀을 익반죽하여 진달래 화전을 빚었다. 시럽 대신 꿀을 사용했다.
Tip: 진달래는 찬 성질을 가지고 있어 열을 내려주고 기침과 가래를 삭여주는 거담작용을 한다. 진달래 술은 100일이 지나야 익으므로 '백일주'라 한다. 꽃 수술에 미약한 독성이 있으니 제거하고 식용으로 사용한다.

노정희 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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