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무와 창의성]4월의 나무-복사나무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

상상은 현실 속에서만 가능하다. 현실을 떠난 상상은 망상이다. 현실 속에서 존재하는 것 중에서 나무는 상상력의 원천이다. 인간이 나무를 통해 상상한 결과는 문학, 역사, 철학, 미술, 음악, 건축, 조경 등 인간이 유사 이래 성취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이 나무에서 상상의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고, 인간의 삶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한순간도 나무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나무는 그 자체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존재다. 그래서 인간은 고대부터 나무를 하늘과 만날 수 있는 신령스럽거나 자신을 보호하는 존재라 생각했다. 장미과의 갈잎떨기나무 복사나무는 인간의 상상력에 큰 영향을 준 나무였다. 중국 전한 회남왕 유안이 저술한 '회남자'에는 복사나무를 4월의 나무로 여겨 천자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천자는 삼공(三公)·구경(九卿)·대부(大夫)를 이끌고 몸소 남쪽 교외로 나가 여름을 맞는다. 궁궐로 돌아와서는 상을 내리고 제후를 봉하며, 예악을 정리하고 좌우 신하를 대접한다. 태위(太尉)에게 명하여 국가의 뛰어난 인재를 보고하게 하고, 현명하고 어진 사람을 선발하게 하며, 효성스러운 사람을 천거하게 하고, 벼슬과 녹을 내린다. 하늘을 도와 만물을 길러 긴 것은 더욱 길게 하고, 높은 것은 더욱 높게 해서 훼손하거나 망가지는 사물이 없게 한다. 토목공사를 일으키지 않게 하고, 큰 나무를 벌목하지 않게 한다."

복사나무는 봄볕의 정수(春陽精)를 상징하는 나무다. 그래서 복사나무는 생기가 충만해서 마귀를 쫓아내는 힘도 왕성했다. 특히 동남향으로 뻗은 복사나무의 가지는 가장 많은 양기를 받아서 아주 힘이 셌다. 인간의 복사나무에 대한 이 같은 상상은 중국 후한 왕충의 '논형'(論衡)에서 보듯이 악귀를 물리치기 위해 복사나무로 사람의 모양을 만들어 문에 걸어두는 풍속을 낳았다. 하나라의 천자 자리를 빼앗은 활쏘기의 명수인 예(羿)를 한척이라는 사람이 복사나무로 만든 큰 방망이로 죽였다는 '회남자'의 얘기는 복사나무의 위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복사나무로 악귀를 물리친 상상은 우리나라 조선시대 성현의 '용재총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민간에서는 동쪽으로 난 복사나무 가지를 푸른 댓이파리·박태기나무 가지, 익모초와 합해 빗자루를 만들어 문을 두드리고 방울을 울리면서 문밖으로 귀신을 쫓았다.

복사나무는 꽃이 잎보다 먼저 핀다. 분홍색 복사꽃은 사랑을 상징하는 색깔이라서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중국 동진 때 도연명은 복사꽃을 별천지로 상상했다. 많은 사람들은 도연명이 상상한 복사꽃의 이상세계에 영감을 받아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복사꽃이 진 자리에서 생기는 복숭아는 인간의 상상력에 엄청난 불을 지폈다. 중국 한나라 무제 시기 동방삭은 서쪽 곤륜산에 살고 있는 신선의 어머니 서왕모에게 훔친 복숭아를 먹고 삼천갑자를 살아 '삼천갑자동방삭'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아울러 복사나무 밭을 지나던 손오공은 9천 년에 한 번 열리는 복숭아를 먹고 500년 동안 바위에 갇혔다. 바위에 갇힌 손오공을 구해준 사람은 삼장법사였다.

복사나무 꽃이 떨어지면 그 옆에서 잎이 돋는다. 복사나무 잎은 '시경'(詩經)에서 미인에 비유할 만큼 아름답다. 조선시대 경북지역에서는 말라리아가 발생하면 복사나무 잎사귀 스물한 장을 따서 일곱 장씩 삼등분해서 '호룡황'(虎龍皇)이라는 글자를 검게 쓴 후 봉투에 넣어 받는 사람의 성명을 써서 도로 위에 떨어뜨려 놓으면 이것을 주운 사람에게 병이 옮아가 환자가 낫는다고 믿었다.

중국과 한국 사람들은 복사나무를 희망과 치유의 대상으로 생각했다. 복사나무를 의미하는 한자 '도'(桃)에서 보듯이 중국 사람들은 이 나무를 통해 길흉을 점쳤다. 인간의 복사나무에 대한 다양한 상상은 이 나무의 생태에 대한 풍부한 해석에 기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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