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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풍 타고 옮겨 붙은 불, 전쟁터 방불케 해" 대구 소방관의 강원 산불 진화기

민가 화재 진압팀, 산불저지팀 신속히 나눠 효율적인 관리, 침착함 잃지 않은 주민들

강원도 산불 진압 지원 나섰던 황현영 소방장. 이주형 기자
강원도 산불 진압 지원 나섰던 황현영 소방장. 이주형 기자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어찌나 바람이 거세게 불던지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 정도였습니다. 저 멀리 산 능선에 붙은 불이 띠를 이루고 독사처럼 넘실대는데 자연스레 주먹을 꽉 쥐게 되더라고요."

13년째 소방관으로 일하고 있는 대구 북부소방서 칠성 119안전센터 황현영(사진) 소방장. 그는 이번 강원도 산불 진화는 그가 겪은 현장 중에서도 가장 큰 두려움과 맞서야 했던 곳이라고 했다. 그는 "강풍이 심해 불덩이가 날아가 폭탄처럼 떨어지는 비화(飛火) 현상이 정말 심했다"며 "같은 민가 밀집 지역 중에서도 불에 다 타버린 집이 있는가 하면 벽 하나를 두고 멀쩡한 집도 있어 주민들 역시 무척 심란해 보였다"고 전했다.

대구소방안전본부는 지난 4일 오후 9시 44분쯤 소방청이 대응 3단계(소방안전본부 소방서 인력·장비 전부 출동)를 발령하고 지역에도 출동을 요청하자마자 2차에 걸쳐 소방대원 122명 소방차 21대, 소방헬기 1대를 급파했다. 황 소방장은 대구팀 첫 선발대 17명에 속했다.

황 소방장은 "5일 오전 4시쯤 집결지인 옥계 119안전센터에 도착하니 이미 소방차 30여대가 일사불란하게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강원소방안전본부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소방관들을 산불 저지팀과 민가 화재 진압팀으로 나누고 모든 차량에 현지 지리를 잘 아는 강원본부 소속 직원,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의용소방대원을 1명씩 동승하게 해 출동을 지원했다.

대구 소방대원들이 진화를 도왔던 강원도 민가의 모습. 차와 집이 검게 그을려 있다. 황현영 소방장 제공
대구 소방대원들이 진화를 도왔던 강원도 민가의 모습. 차와 집이 검게 그을려 있다. 황현영 소방장 제공

대구팀의 첫 출동지역은 절반 정도 타고 있는 민가였다. 집결지에 도착하자마자 지시를 받고 민가로 출동하기까지 30분이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신속했다. 황 소방장은 5일 오후 1시까지 민가 화재 진압을, 밤에는 산불 저지 방어선 구축을 돕고 6일 새벽 2시에야 대구로 복귀했다.

먼 길 출장을 가 밤샘 화재 진압에 고생했지만 황 소방장은 오히려 현장지휘팀과 주민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누구나 큰불을 마주치면 본인의 안전을 더 생각하는데 고성군 주민들이 정말 침착했다는 것이다.

그는 "진화를 하다 지붕이 떨어진 일이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진압을 계속하려 하는데 주민이 한사코 들어가지 말라고 말리더라"면서 "그 외에도 빵을 몇 박스씩 사서 나눠주는 분, 내 집이 아니라 이웃집부터 진화하라는 분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아울러 황 소방장은 "역대 최대 규모인 전국의 소방 인력이 다 모인 상황에서 강원소방안전본부가 체계적으로 지시 및 관리를 잘 해줘 효율적으로 화재 진압에 나설 수 있었던 것도 감사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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