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윤이 어머니 허희정 (40)씨는 아직도 2017년 11월에 멈춰 살고 있다. 재윤이가 집에 돌아오지 못한지 496일째. 책장 한쪽에는 자동차 로봇이 무표정하게 우두커니 서 있다. 말없이 재윤이를 잃은 슬픔을 삭히는 아빠가 지난 어린이날 자동차를 좋아하던 재윤이에게 가져다 놓은 마지막 선물이다.
감기 증상을 보인 재윤이를 끌어안고 집을 나선 것이 마지막 이별일 줄은 몰랐다. 고통스러웠던 백혈병 치료를 3년간 잘 버텨왔던 아이가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날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재윤이가 살아있으면 이제 곧 새 신발과 새 가방을 메고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 오빠가 세상을 떠난 사실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 여동생은 "오빠 언제 돌아오느냐"고 물으며 여전히 친구들에게 "나도 오빠가 있다"고 말한다.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떠난 재윤이, 병원에서는'절차대로 소송 진행하라'
허 씨는 "의료사고로 재윤이가 희생당했다"며 "의료진의 오진과 과도한 진정제 투여, 무성의한 모니터링이 재윤이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며 가슴을 쳤다.
기나긴 의료소송 결과 20분에 걸쳐 들어가야 할 진정제가 5분 안에 투여됐고, 애초에 과다 사용된 진정제를 투여하고서는 무호흡 증세로 청색증이 생길때까지 의료진은 몰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허 씨는 "아이가 인공호흡기 등 응급 처치 장비도 없는 곳에서 죽어갔는데 병원 관계자들은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 없이 책임을 떠 넘기기만 한다"고 분노했다.
허 씨는 "현행 환자안전법상 중대한 안전사고가 발생해도 신고 의무 없이 자율에 맡겨져 있다 보니 이에 대한 예방 및 재발방지 대책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윤이 사망 직후 영남대병원에 보건복지부로 안전사고 신고를 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의무 신고가 아니니 원하면 보호자가 알아서 하라'는 대답이 돌아왔던 것이다.
허 씨는 "자율이어서 안전사고에 대해 의료기관 측이 신고하는 일이 거의 없고, 신고가 없다 보니 보건당국이 문제점을 분석하고 재발방지책을 수립하기도 어려운 한계가 있다"고 했다.
이후 허 씨는 재윤이와 같은 피해를 막는 일에 매달렸다. 중대한 환자안전사고를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해 재윤이와 같은 피해를 막아야겠다는 사명감에서다.
그는 "병원이 잘못을 인정하고 환아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치료를 받도록 보장되는 것이 재윤이의 희생을 유의미하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했다. '개인이 병원을 상대로 싸우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주위의 수많은 만류에도 허 씨가 계속 행동에 나서는 이유다. 그는 병원이 진정한 사과를 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할 때까지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허 씨는 "아이들이 죄를 지어서 소아암에 걸린 것은 아니지 않느냐. 작고 어린 아이들이 병을 이기려고 혼신의 노력을 한다"면서 "의료진이 어린 환자들을 치료하는 일을 가볍게 대하지 않고, 업무가 아닌 '보호'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재윤이 법 국회 통과'중대한 환자 안전사고 의무 신고해야 돼'
재윤이 사건으로 촉발된 환자안전사고 관련 법안개정 촉구는 허 씨의 끈질긴 노력으로 결국 의미있는 결과를 끌어냈다. 환자안전법 개정안(일명 '재윤이법')이 지난달 2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통과된 것이다. 앞으로 의료기관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중대한 환자안전사고가 나면 의료기관은 이를 보건복지부에 즉시 알려야 한다.
이 법은 ▷의료진의 사전설명과 다른 내용의 수술, 수혈, 전신마취로 환자가 사망하거나 심각한 손상을 입은 사고 ▷진료기록과 다른 의약품, 투여 경로, 용량 등으로 환자가 사망하거나 심각한 손상을 입은 사고 ▷다른 부위 수술로 환자안전사고 발생 ▷의료기관 내에서 신체적 폭력으로 인해 환자가 사망하거나 심각한 손상을 입은 경우 등은 즉시 보건복지부에 알려야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재윤이와 같은 안타까운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앞으로 환자안전사고 예방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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