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흥]부산... 유채꽃이 노오라이 마이 피었드라 아이가.

낙동강 하구 벚꽃길 30리... 대나무 숲과 벚꽃의 어우러짐
자전거로 타야할 만큼 길고 긴, 꽃비 내리는 벚꽃 터널
기장미역 산지였던 청사포는 고양이마을로 입소문
청사포 몽돌해변은 전면 개방 초읽기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일본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와 헷갈리면 곤란한 '봄은 고양이로다'라는 제목의 시다. 1924년 발표됐다. 대구 출신 이장희 시인의 작품이다. 꽤 알려졌다. 두류공원에 시비가 있다. 중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봄을 고양이에 비유한 시인의 감각이 기막히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봄은 눈으로 쏟아져 나른하다. 간질이듯 따신 햇살에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내린다. '고양이 눈인사'인지 '졸리는 눈'인지 분간하기 애매한 '봄눈'이다. 끔뻑끔뻑 서서히 감았다 뜬 눈에 봄의 색깔이 선명히 들어온다.

낙동강 하구 유채꽃 둔치에 노란 봄이 떠내려간다. 낙동강변 둑길 30리 아득한 벚꽃길 위로 연분홍 꽃비가 내린다. 붉게 바뀐 잔여 벚꽃에선 곧 물러갈 봄이 보인다.

드디어 꽉 찬 봄이다. 만끽(滿喫)할 시간이다. 한 주만 더, 한 주만 더 미룰 여유가 없다. 이 봄이 터져 흐르면 이내 여름이다. 여름에 들어선다는 입하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부산은 벌써 반팔차림이 자연스럽다.

부산유채꽃축제가 대저생태공원 일원에서 열리고 있다. 80만㎡(24만평) 규모로 축구장 100개 크기다. 노란 물결이 바람에 흔들려 장관이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부산유채꽃축제가 대저생태공원 일원에서 열리고 있다. 80만㎡(24만평) 규모로 축구장 100개 크기다. 노란 물결이 바람에 흔들려 장관이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대저생태공원 유채꽃

정치적 색깔이 더해지면서 변색된 감이 없지 않지만 노란색은 '주의깊게 보호해야할 것들'로 통한다. 초등학교 앞에 매물로 나오던 병아리는 보호 본능마저 불렀는데 그것이 검정색이거나 파란색이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보면 고개를 끄덕이고도 남는다. 유치원 원아들의 단체복이 대개 노란색인 이유도 마찬가지다.

역으로 활용한 게 독극물 표시다. 독극물에는 노란색과 검정색이 쓰이는데, 대개 노란색 바탕에 검정색 글씨로 '위험(DANGER)'이라 써놓는다. 방사능폐기물이 담긴 드럼통을 떠올리면 쉽다. 위험을 진지하게, 단박에 알린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정리한 뉴턴을 언급하며 물리학적 가치를 훼손할 의도는 없지만 노란색에도 '인력'이 작동한다. '날 보러 오라'는 뜻으로 해석되는데 노란색 꽃을 보면 사람은 가까이 다가간다. 꽃이 부리는 마법 같기도 한데 산수유, 개나리, 수선화, 유채꽃은 인류사와 더불어 봄이면 봄마다 그랬다.

부산유채꽃축제가 대저생태공원 일원에서 열리고 있다. 구포대교에서 내려다 본 노란 물결이 바람에 흔들려 장관이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부산유채꽃축제가 대저생태공원 일원에서 열리고 있다. 구포대교에서 내려다 본 노란 물결이 바람에 흔들려 장관이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부산 강서구 구포대교와 강서낙동강교 사이에 유채꽃 짭쪼름한 향이 진하다. 노랗다고 해버리기엔 부족하다. 노오오오랗다. 학식있게 말하자면 레몬색보다 바나나색에 가깝다. 한 송이로는 그저 노란색인데 모여 있으니 향만큼 진한 색깔이다. 흙먼지가 풀풀 날려 검정 구두 신고 온 이들이 툴툴대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만한 눈요기다. '부산유채꽃축제'라는 이름으로 8년째다. 14일(일)까지 축제가 이어진다.

축제장 특설무대가 가까울수록 유채꽃의 성장치가 아까와 다르다. 키가 성인 허리춤을 넘는다. 강서낙동강교가 가까워질수록 더 진한 색과 향이다.

주차가 난제다. '대저생태공원'으로 검색하고 달렸더니 내비게이션은 구포대교 아래 주차장을 알려준다. 어차피 못 들어간다. 자동 주차가 된 건가 싶을 만큼, 공원 입구에 가까워질수록 자동차는 움직이지 못한다. 차에서 내려 걷고 보니 도시철도 강서구청역이 아주 가깝다. 두 말할 것도 없다. 여기선 대중교통이 진리다.

14일(일)까지 부산 강서구 대저생태공원 일원에서 열리는 부산유채꽃축제에 온 관광객들이 유채꽃 노란 물결을 만끽하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14일(일)까지 부산 강서구 대저생태공원 일원에서 열리는 부산유채꽃축제에 온 관광객들이 유채꽃 노란 물결을 만끽하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도시철도 강서구청역에서 축제장 특설무대까지는 1km 거리지만 '강서낙동강변 30리 벚꽃길' 시작점이 코앞이라 지루할 틈이 없다. 대나무와 벚꽃이 알찬 궁합을 뽐낸다. 짐짓 자전거로 30리 길을 달리고 싶은 욕심도 난다. 가까이에 자전거 대여소도 있다. 시간당 3천원이다.

다만 주말에 이곳을 찾는다면 걷는 게 나을지 모른다. 인파에 함몰돼 자전거가 속도를 내기는커녕 전진하기도 쉽잖다. 굳이 낙동강 하구까지 다녀오겠다면 자전거는 필수다. 왕복 24km 거리다. 미세먼지가 둥실둥실 떠다녀 뿌옇게 파란 하늘을 비행기 한 대가 가른다. 서서히 올라 날아가는 기체의 소속사를 알 정도로 가깝다. 김해공항이 지척이다.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내려다본 오륙도와 오륙도 스카이워크의 모습.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내려다본 오륙도와 오륙도 스카이워크의 모습.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오륙도와 이기대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목메어 불러봐도 대답없는 내 형제여.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조용필을 몰라도 사직야구장에 가면 자동으로 알게 된다는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자연반사적으로 들려오는 오륙도 앞 스카이워크에 서니 언제부터인가 이곳의 주인처럼 들어서있는 고층 아파트로 부러움인지, 신세 한탄인지 모를 시선이 향한다. '저기서 보면 대마도가 훨씬 잘 보이지 않을까'라며.

저기서 보이는 바다는 전망도 좋을 텐데 그동안 나는 무엇을 했는지, 반추하는 것인지 자책인지 모를 반성문을 속으로 여러 줄 쓰다보면 자연반사적으로 통장의 잔고와 아파트 시세를 어림셈한다.

다음 생을 노릴 것인지, 다음 로또를 노릴 것인지 가늠하며 자포자기할 찰나 느닷없이 불어 닥치는 해풍을 맞고서야 정신 승리에 안착한다. '여긴 바람이 많이 불어서 사람 살 만한 곳이 못 된다'며, '어차피 미세먼지 때문에 대마도는 보이지 않는다'며.

이기대의 힐링코스로 꼽히고 있는 이기대 해안산책로를 관광객과 주민들이 걷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이기대의 힐링코스로 꼽히고 있는 이기대 해안산책로를 관광객과 주민들이 걷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오륙도는 명승급 대접을 받아온 이기대와 가깝다. 이기대는 해운대, 태종대, 신선대처럼 풍경이 좋아 '이야' 소리가 나는 곳이다. 맞은 편 '꽃피는 동백섬'도, 해운대 마천루도 바다 건너에 보인다. 성인 남성의 이름 같기도 한 지명은 임진왜란에서 왔다. 진주에서 왜장을 끌어안고 물속에 뛰어든 논개에 버금가는 기생 두 명(二妓)의 이야기다. 임진왜란 때 수영성을 함락한 왜군이 축하연을 열면서 기생을 동원했는데 두 명의 기생이 술 취한 왜장을 끌어안고 바다에 빠져 죽었다는 것이다. 훈장급 서훈이 불가피한 이들이나 이름이 전하진 않는다.

이기대의 힐링코스로 꼽히고 있는 이기대 해안산책로를 관광객과 주민들이 걷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이기대의 힐링코스로 꼽히고 있는 이기대 해안산책로를 관광객과 주민들이 걷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이기대는 해안산책로가 자랑거리다. 2km 남짓으로 다소 긴 게 흠이라면 흠이다. 해안산책로 산책을 생각했더니 어느 새 땀흘리며 걷고 있는 수행자의 모습이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이기대는 용호동 동쪽 장자산(해발고도 225m) 자락에 접한 해안 전체를 이르기 때문이다. 이기대에서 벗어나 광안대교에서 보니 이기대 해안산책로는 산 아래를 따라 걷는 길처럼 보인다.

◆청사포 고양이들

폐선된 동해남부선 철로를 따라 가면 청사포를 지난다. 이름이 곱다. 면사포, 청사포. 웨딩촬영이라도 하러 와야할 것 같은, 프러포즈 성지일 것 같은 음운이다. 해운대의 작은 포구, 기장미역의 본산이라는 청사포다. 동네에 들어서 보니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가 나란히 서서 바다를 내다본다. 체스판의 여왕 둘이 대치하고 있는 듯 어느 하나 먼저 움직일 수 없어 평화로워 보인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뚝딱거리며 변신이 한창이다. 핫플레이스 태동의 소리다.

청사(靑沙)라는 이름과 달리 푸른 모래는 안 보인다. 알고보니 청사포는 푸른 뱀 전설에서 나온 이름이다. 모래(沙)가 아닌 뱀(蛇)이다. 푸른 뱀 전설은 이렇다. 옛날 포구에 갓 시집온 여인이 고기잡이를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매일 바다를 보며 그리워하니 용왕이 푸른 뱀을 보내 여인을 데려오게 하면서 남편과 만났다는 이야기다. 어디서 만났는지 명확한 서술이 없으나 해양학, 종교학, 수산학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문맥상 저승이 합리적이다.

2017년 개장한 청사포다릿돌전망대. 푸른뱀 전설을 형상화한 구조물로 해운대 청사포 일대를 조망할 수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2017년 개장한 청사포다릿돌전망대. 푸른뱀 전설을 형상화한 구조물로 해운대 청사포 일대를 조망할 수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푸른 뱀의 전설을 형상화한 다릿돌전망대 스카이워크가 설치돼 있다. 전망대 길이가 72.5m다. 뱀의 길쭉한 몸통처럼 다이나믹하게 꿈틀대는 S자로 만들어뒀다. '다릿돌'이란 이름은 청사포 해안에서 해상 등대까지 가지런히 늘어선 암초 다섯 개가 징검다리 같다고 붙은 것이다. 다섯 암초에는 전복, 멍게, 해삼, 성게 등 해산물이 많아 청사포 해녀들이 주로 물질하는 곳이라 한다. 여기서 자란 돌미역이 기장미역으로 팔려나간다고 한다.

다릿돌 전망대 개폐는 풍속에 달렸다. 강풍이 불면 전망대는 열리지 않는다. 부산에는 청사포다릿돌전망대와 더불어 스카이워크가 두 곳 더 있는데 앞서 소개한 오륙도 스카이워크가 부산 3대 스카이워크 중에서 최고참이다. 나머지 하나는 서구 암남동 송도구름산책로다.

다릿돌전망대를 지나 데크길이 난 쪽으로 더 걸어간다. 몽돌이 파도에 맞춰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선명하다. 청사포 몽돌해변이다. 30년 가까이 민간에 개방되지 않던 곳이다. 1985년 10월 19일 청사포 간첩선 격침 사건 때문이었다. 군이 철책을 설치하면서 발길이 끊겼다. 곧 개방될 거란 공식적인 발표가 지난해 있었다. 개방 시기가 언제일지 정해지진 않았다. 길진 않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면사포와 비슷한 발음의 청사포에는 실제 연인들의 발길이 잦다. 이들의 달달한 속삭임이 귓등을 넘어 다니는데 고양이를 찾는 수군거림도 섞여 있다. 청사포는 '고양이마을 프로젝트'가 진행중인 곳으로, 반대 민원도 만만치 않지만 고양이 천국이라는 입소문이 나 있었다.

냥이 집사를 자처한 이들은 제 발로 청사포를 찾는데 고양이의 행복이 자신의 행복인 양 어떤 곳이 고양이 낙원인지 알아보겠노라 원정 출장도 불사한다. 이 정도 정성이면 대만 허우통마을과 일본 아이노시마에 다녀왔을 법하다. 심지어 터키 이스탄불까지도.

2017년 개장한 청사포다릿돌전망대. 푸른뱀 전설을 형상화한 구조물로 해운대 청사포 일대를 조망할 수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2017년 개장한 청사포다릿돌전망대. 푸른뱀 전설을 형상화한 구조물로 해운대 청사포 일대를 조망할 수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CNN이 선정한 고양이 명소, 허우통마을과 아이노시마에는 고양이만 보러 오는 관광객이 대다수다. 국내에서도 통영 욕지도가 고양이 천국으로 꼽혔지만 개체수가 기대만큼은 아니라는 냥집사들의 총평으로 정리됐다. 청사포의 카페와 식당 앞에도 길고양이 급식소와 표지판 등이 보인다. 각자 영역이 있는 고양이들이 각자 끼니 때에, 각자 알아서 찾아온다.

청사포는 공영주차장에 주차하고 걸어서 다니는 편이 좋다. 부산 시티투어 블루라인이 정차하는 곳이기도 하다. 시티투어버스로는 인근 바다에 면한 사찰, 해동용궁사에도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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