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연극을 하는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새벽 4시가 넘은 시간 적막을 깨고 울리는 휴대폰 벨소리는 마음을 덜컥 내려앉게 하였다. 걱정되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곧이어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 "선배 너무 힘들어요. 배우로 활동하는 건 진짜 힘든 것 같아요…" 그는 오열하며 자신이 맞닥뜨린 현실을 토로하였다. 나는 뭐라 말할 수 없었다. 나 역시 그러한 밤을 숱하게 보냈기 때문이다.그가 그렇게 토로하는 음성과 단어의 파동은 곧 나의 현실이었다.
연기자로 산다는 것은 매번 남에게 선택 받아야하는 비정규직 삶의 연속이다. 물론 스스로 좋아서 시작했지만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선택을 일상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고통스럽다. 치열한 오디션의 경쟁, 오디션을 넘으면 작품 안에서의 갈등, 작품이 관객과 만날 때 그들을 만족시켜야한다는 심리적 부담감 그리고 막이 내리면 언제 또다시 연기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막연한 기다림이 쳇바퀴 돌 듯 반복적으로 맞이한다. 어디 그뿐일까. 오디션과 작품을 대기하기 위해 생계수단 마저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못하는 현실은 부가적으로 뒤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며 선(善)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신의 신체로 관객에게 유희를 주기도 하고, 때로는 현실을 묘사하거나 풍자하여 일상에서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삶의 단면을 깨우쳐 주기도 한다. 이를 통해 누군가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이것 또한 아름답고 가치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것이 예술가가 관객에게 건네는 조그마한 위로와 위안이라 생각한다.
선(善)의 길이 고되고 고통스러울 수 있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과 거짓이 없는 '호연지기'(浩然之氣)의 삶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자세와 마음이 관객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철학자 몽테뉴도 선(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한 바 있다. "선(善)은 확실하고 한정된 것이며 악(惡)은 무한(無限)하고 불확실한 것이다. 천 갈래의 길은 목표에 이르지 못하고, 한 개의 길은 목표에 이른다."고 자신의 저서 '수상록'에서 언급한다. 결국 나를 포함한 많은 무명배우들은 지금도 고독한 길을 걷고 있지만 선의 가치를 믿고 묵묵히 나아간다면 언젠가 관객의 큰 사랑을 받는 배우가 될 것이다. 김동훈 연극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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