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동 꽃시장에 굴다리가 생기기 전에는 '후미끼리(踏切-철로 건널목의 일어)'를 건너 칠성시장 장보러 다녔다. 이 철길은 여름밤에는 바람 쐬러 동네 사람들이 놀러 나오는 곳이다. 개 중에는 철로를 베고 자는 사람도 있었고 애들은 운동장처럼 뛰어 놀았다. 낮에는 철로에 귀를 대고 있다고 기차오는 소리가 울리면 대못을 철로위에 두고 기차 오기를 기다리는 애들도 있었다. 기차가 지나가고 나면 못은 납작하게 모양이 변해있다.
남자 애들은 못을 지남철 만든다고 이런 모험을 하지만 또 다른 목적은 이 정도 간 큰 행동을 해야 동네 애들 앞에 뻐기고 다닐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모험은 신성극장 앞에 있는 경부선 '푸른 다리 위'에서도 성행하였다. 기차 오는 소리를 잘못 계산하면 못을 두고 나오기도 전에 저승으로 갈 수가 있고 못의 위치가 잘못 놓여 지면 튕겨 나와 큰 부상을 당하기도 한다.
철로 건널목은 간수와 차단기가 있어 기차가 오면 차와 사람을 못 가게 막는다. 하지만 차단기 밑으로 기어서 넘어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차단기가 고장이 나서 내려오지도 않는다. 무단횡단 하는 이, 못을 놓고 기다리는 애, 술 마시고 철로를 베개 삼아 베고 자는 주정뱅이를 보면 기관사는 목 쉰 듯 한 기적소리를 길게 여러 번 크게 울린다.
"기차 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 칙 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기차소리 요란해도 아기아기 잘도 잔다. 기차 길 옆 옥수수 밭 옥수수는 잘도 큰다. 칙 폭 칙칙폭폭 칙칙폭폭"-'기찻길 옆(윤극영 작곡, 윤석중 작사)'
이 노래 가사는 문학적인 내용이지 현실적이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시끄러운 기차소리에 어떻게 간난 애가 잘 잘 수 있단 말인가?.
대학 다닐 때 서울 이문동 하숙집이 철로 바로 옆에 있었다. 기차가 지나 갈 때는 집이 흔들흔들했다. 처음에는 집 무너질까 두려웠다. 기적소리 요란하고 월남전이 한참일 때는 군가소리 등천했다.
"자유통일 위해서 조국을 지키시다/조국의 이름으로 임들은 뽑혔으니/그 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가시는 곳 월남 땅 하늘은 멀더라도/한결 같은 겨레마음 님의 뒤를 따르리다/한결 같은 겨레마음 님의 뒤를 따르리다." '신탄리'에서 '청량리'가는 군용열차에서 파월 맹호 부대 장병의 군가소리 요란했다. 그래도 잠만 잘 잤다.
1814년 영국에서 G. 스티븐슨이 증기기관차를 발명하고 1825년에 로커 모션호가 최초로 실용화 되었다. 한국에서는 1899년 서울-인천을 오가는 모걸형 탱크기관차가 최초의 상업용 기차로 등장한다.
대구는 1904년 대구역사가 세워지며 본격적인 기차운행이 시작된다. 1945년 9월 29일 대구 역 구내에서 열차끼리 충돌하는 대 참사가 일어났다. 73명이 죽고 120여명이 부상을 입는다. 나라가 못 살 때는 철도 주변은 담이 없었다. 철로를 건너다 죽고, 놀다가 치어죽고, 여름밤 바람 쐬러 나왔다가도 비명횡사했다. 가끔은 스스로 뛰어 들어 죽기도 했다.
증기기관차의 기적소리는 늘 애조를 띤다. 야간열차가 토하는 경적소리는 슬프다. 특히 비오는 밤에 들리는 그 소리는 무서웠다. 철로 주변에서 황천 행한 객귀(客鬼)들의 울음소리 같았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자 철로 연변에는 담장이 둘러지고 소음벽도 세웠다. 1967년에는 증기기관차 운행도 중단했다. 열차 머리에 '미카', '파시'라고 써 다니던 열차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망자의 목쇤 울음 같던 기적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또 하나의 대구소리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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