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군인 옷 만드는 데 가서 미싱도 배우면 돈벌이도 좋고, 집에서 가마니 짜는 것보다 낫다." "전장이 커지는데 여자들도 도와야 한다." 할머니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앞잡이를 따라 부산에 가서 '아사마 마루'(淺間丸)라는 배를 탔다.('김화자'의 증언, 시사인 2016. 1.) 위안부 소녀를 대만으로 실어 나른 아사마 마루는 일본 NYK선박이 영국에서 들여온 큰 디젤 여객선이었다. 일본 요코하마를 출발하여 홍콩, 상하이, 하와이와 미국 서부로 항해하였다. 전쟁 중이던 1941년 미국 내 일본 자산 동결과 무역 금지가 시행되자, 배는 일본으로 귀환하였다. 해군에 징발되어 사이판, 싱가포르, 마닐라로 군인, 화물, 연합군 포로를 운송한다.
연합국의 제재를 피하기 위하여 선체와 일장기는 검은 칠로 가렸다. 이 배가 부산에 정박한 기록은 찾을 수 없었으나, 김화자는 이 배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아사마 마루는 1944년 10월 동남아시아로의 마지막 항해에 나섰다. 상하이 앞바다에서도 공격을 받았으나 필사적으로 탈출한다. 그러나 11월 2일 마닐라 근처에서 미군 어뢰에 피습되어 많은 화물과 474명의 젊은 수병들을 함께 안고 태평양 깊은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아사마 마루'라고 새겨진 작은 청동종(사진)을 우연히 만났다. 1929년 10월 7일 첫 항해를 기념하여 탑승객들에게 주었던 것이다. 당시 초고속으로 태평양을 횡단하던 기선을 처음 타본 승객들의 기쁨이 담긴 물품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종소리에 스며든 위안부 소녀의 아픔이 먼저 다가왔다. 학병과 징용으로 먼 남태평양으로 던져진 식민지 청년들의 절망도 보였다. 얼마 남지 않은 생존자들의 절규도 들린다. "나는 아직 잊지 못한다. 누가 끝났다고 말하는가?"

이재태 경북대 의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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