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11일 낙태죄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낙태를 둘러싼 사회 인식이 크게 변화했기 때문이라는 풀이다.
7년 전인 2012년 헌재는 현행 형법상 낙태 관련 처벌조항이 임신부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당시 반대 의견도 4명이 나와 찬·반이 팽팽히 맞선 상황이었다.
이번에도 쟁점은 과거와 크게 다르진 않았지만 판단은 달랐다. 재판관들은 "국가가 생명을 보호하는 입법적 조처를 함에 있어 인간생명의 발달단계에 따라 그 보호정도나 보호수단을 달리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결국 태아의 생명권이 임신부의 자기결정권보다 무조건 우선시돼야 하는 게 아니라, 임신 기간에 따라 달리 볼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이다.
헌재는 의학계 의견을 근거로 태아가 모체를 떠나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을 마지막 생리기간의 첫날부터 기산해 '임신 22주' 내외로 보고, 임신부의 자기결정권 보장을 위해 여성이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를 결정하고 실행하기까지 충분한 시간이 확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학계 일각에서는 임신 12주까지는 자아 인식 등 의식적 경험에 필요한 신경생리학적 구조·기능을 갖추지 못하고, 이후의 낙태는 자궁천공이나 출혈폐혈증 등 합병증 우려가 있다는 점을 들어 12주 이내를 낙태 허용 기간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헌재가 7년 만에 판단을 바꾸게 된 배경에는 시민 여론이 '낙태법 폐지'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데다, 국가인권위원회 마저 최근 낙태죄가 여성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위헌 의견을 헌재에 제출하는 등 사회 인식 변화가 큰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헌재 판결을 하루 앞둔 지난 10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4명에게 조사한 결과, '낙태 폐지'에 동의하는 응답은 58.3%에 달한 반면 '유지' 응답은 30.4%에 그쳤다. 11.3%는 모름·무응답으로 집계됐다.
의료계에서도 현행법으로는 낙태 수술 과정 중의 의료사고나 후유증 구제가 어려우며, 비싼 수술비로 인해 미성년자나 저소득층 여성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지적도 많았다.
이번 '헌법불합치 판결을 통해 헌재는 ▷결정가능기간을 언제까지로 볼 것인가 ▷결정가능기간 중 사회·경제적 사유에 대한 확인을 요구할 것인가 ▷상담요건 및 숙려기간 등을 추가할 것인가 등을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로 남겼다.
이날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헌법재판소의 '반성적 고려'가 담긴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천주현 변호사는 "그동안 최후의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 형벌권'을 남용해 여성들의 권리를 지나치게 침해한 점을 인정하고 개선을 촉구한 것"이라며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간통죄를 폐지했던 헌재가 낙태죄에 대해서도 제동을 가하면서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규정한 헌법 제 10조의 인격권을 보다 존중하고 구체화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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