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의병장으로 항일에 나섰던 대학자 척암(拓菴) 김도화(金道和·1825~1912) 선생의 문집 책판이 유럽을 떠돌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고국으로 들어와 11일 공개됐다.
이날 공개된 책판은 척암 문집 책판 가운데 가로 48.3㎝, 세로 19.1㎝, 두께 2.0㎝의 '9권 23~24면, 태극도설' 부분이다. 오스트리아의 한 가족이 오래 전부터 소장했던 것으로 양쪽 마구리(손잡이)는 빠져 있었고 한쪽 면에는 글자를 조각한 부분에 금색 안료를 덧칠한 상태였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유럽을 떠돌던 이 책판은 지난 2월 독일 뒤셀도르프의 한 경매사이트에 올라왔는데, 해외 경매사이트를 모니터링하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확인, 한국국학진흥원과 협의를 통해 3월 14일에 경매받아 국내로 들여왔다.
이 책판은 경매 매입 과정에 도움을 준 온라인게임회사 라이엇게임즈 코리아의 서울 삼성동 오디토리움에서 11일 언론 공개회 후 한국국학진흥원에 기증됐다.
라이엇게임즈 코리아는 조선 불화 '석가삼존도'와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귀환에도 기여한 문화재지킴이 기업이다.
척암 선생은 영남에서 활동한 조선 말기의 대학자이자 의병장이다. 한국 독립운동의 산실인 임청각(臨淸閣) 문중의 사위로 석주 이상룡의 종고모부이기도 하다.
척암은 퇴계학파의 학통을 이어받아 학문에 힘쓰며 후진을 양성하는 한편, 1895년의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을미의병이 촉발되자 통문을 각지로 보내고 1896년 1월 '안동의진'(安東義陣)의 결성을 결의했다.
같은 해 3월에 의병대장으로 추대돼 지휘부를 조직하고 격문을 발송, 의병 참여를 호소했다.

안동의진이 해산하고 을사늑약을 거쳐 한일강제병합에 이르자, 척암은 자택의 대문에 '합방대반대지가'(合邦大反對之家)라 써 붙이고 상소를 올리는 등 문필로 일제의 부당함을 끊임없이 호소했다. 척암은 통감부에 보낸 글에서 "스스로 목매어 죽는 것보다는, 싸우다가 적의 칼날에 죽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항일의 의지를 불태우기도 했다.
'척암문집'은 그의 제자와 후손에 의해 1917년에 간행됐으며, 1천여 장 정도로 추정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전하고 있는 책판은 한국국학진흥원에 소장된 20장이다.
19장은 후손이 기탁했고, 1장은 2016년 에드워드 슐츠 미국 하와이대학 교수가 진흥원에 넘겼다. 2015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유교책판'의 일부이기도 하다.

조현재 한국국학진흥원장은 "이번 '척암선생문집' 책판의 국내 환수를 계기로 일제강점기에 흩어진 우리의 기록유산 자료도 제자리를 찾아 소중히 보존·연구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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