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른 아침에]인사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좋지 않은 사람’ 걸러 내려는 목적
인사청문회의 본질적인 존재 이유
작은 배에 무거운 짐 실으면 침몰
후보자 감당할 ‘무게’ 알고 임용을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소선(小船)은 난감중재(難堪重載)요, 심경(深逕)은 불의독행(不宜獨行)이라."(명심보감) "작은 배는 무거운 짐을 감당하기 어렵고, 으슥한 길은 혼자 가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앞부분은 "자신의 능력을 감안해서 행동하라", 뒷부분은 "어려움이 예상되면 미리 그것을 피할 줄 아는 지혜를 가져라"는 뜻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이른바 '인사 참사'로 시끄러운 정국을 보며 떠오른 말이다. '소선은 난감중재', 자신이 어느 정도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인지 전혀 가늠하지 못하는 공직 후보자들이 우선 문제다. 말 그대로 작은 배에 무거운 짐을 싣는 것은 감당하기 어렵다. 결국 배가 침몰하거나 파선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제 분수에 넘치는 과욕을 부리면 망하기 십상이다.

아무리 좋은 옷도 자기 몸에 맞아야 입을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지위도 자기에게 버거우면 실패하거나 견디지 못하는 것은 자명하다. 공직에 적합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버젓이 심판대에 오르는 일이 많다. 용감한지 무모한지 모를 일이다. 침몰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다. 살아온 인생 전체가 난파한 줄도 모른 채 고위직에 오른 것만 영광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보인다. 검증자들이 새겨야 할 경구가 '심경은 불의독행'이다. 으슥한 길을 홀로 가면 험한 일을 당하기 십상이다. 그런 길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가야 한다면 봉변당하지 않도록 미리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

어두운 길을 혼자 가다가 문제에 봉착하면 지혜롭지 못하다. 함량 미달인 후보를 국민 앞에 내놓는 것은 으슥한 길을 홀로 가려는 것과 비슷하다. 길을 막고 시비 거는 사람이 나타날 수 있음을 예상하고 대비했어야 한다.

7명 후보자 모두에게서 심각한 문제가 발견되었던 장관 인사 추천이 그랬다.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주식투자 자체야 문제될 것 없다. 액수가 많은 것도 비난의 대상일 수 없다. 문제는 당사자가 판사, 남편도 판사 출신 변호사라는 사실이다. 거래 과정 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것을 예상하고 더욱 면밀하게 점검했어야 한다. 뒤늦게 당사자에게 사실관계를 해명하도록 하는 것은 자신들의 직무를 소홀히 했다는 방증이다. 무능했거나 알고도 강행했다면 오만한 것이다. 어느 쪽이든 책망 받아 마땅하다. 청와대 인사 검증이 허술하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오죽했으면 정홍원 전 총리가 인사 검증 과정에서 "젖 먹을 때부터 지은 죄가 다 생각나더라"는 말까지 했겠는가.

'우리 편'은 적당히 넘기려는 동무 의식이 문제다. 유독 문재인 정부만도 아니다. 과거 정권도 다를 바 없었다. 우리 정치에서 인사 문제야말로 여야 갈등을 유발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다. 특히 인사청문회를 거치면서 갈등과 파열음은 증폭된다. 고위공직자의 철저한 검증을 위해 도입된 인사청문회가 정쟁의 주 무대가 된 느낌이다. 신상털기식 인사청문회 무용론이 종종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쯤에서 필요한 것은 인사 검증과 청문회의 존재 이유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우리가 도입한 미국식 공직자 검증과 인사청문회는 애초부터 '좋은 사람'을 뽑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좋지 않은 사람'이 고위 공직에 임용되는 것을 막으려는 데 근본 목적이 있다. '잘된 임용'도 중요하지만 '잘못된 임용'을 방지하는 게 더욱 긴요하다는 인식이다. 문제 인사에 의한 국가적 손실이 유능한 사람에 의한 이익보다 더 크다는 게 인사 검증과 인사 청문 제도의 본질적 존재 이유이다. 미국에서 인사 대상자에게 보내는 수많은 질문 마지막에 꼭 포함되는 게 있다. '(그 외에) 당신의 지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보를 진술하라'는 것이다. 무거운 직책을 맡길 만한 사람인지, 으슥한 길에서 봉변을 당할 일은 없는지 묻는 것이다. 좋은 사람을 찾는 게 아니라, 좋지 않은 사람을 걸러내는 게 인사 검증이다.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 본인이나 검증자가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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