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유방암 후유증 앓는 30대 이은하 씨 "딸 위해서 씩씩해지고 싶어"

유방암 후유증으로 온 몸이 쇠약해져 일을 하기 힘든 이은하(35)씨는 7살 딸 가연이와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 =이주형 기자
유방암 후유증으로 온 몸이 쇠약해져 일을 하기 힘든 이은하(35)씨는 7살 딸 가연이와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 =이주형 기자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너무나도 힘들어 죽음을 생각했던 어느날, 이은하(35·가명) 씨의 가슴에 들어왔던 한 문장이었나보다. 그의 책장에 꽂힌 책 '모든 삶은 서툴다' 50페이지에 적인 이 구절에는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불타버린 집, 긴 소송 끝에 이혼, 그리고 그에게 닥친 유방암과 부모님의 암 투병. 연이어 들이닥친 불행이 그를 무섭게 짓누르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할 정도로 비참했다는 이 씨. 그는 딸 때문이라도 다시 일어서고 싶지만 유방암 후유증으로 약해진 몸은 의지만큼 따라주질 않아 답답할 뿐이다.

◆오갈 곳 없어 딸 손 잡고 요양원 들어가 암 투병

이 씨는 2017년 11월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 미세하게 느껴졌던 멍울이 한 달 사이 신생아 주먹만큼 커져 버려 손 쓸 새도 없이 오른쪽 유방을 모두 잘라내야 했다. 그 후 6개월 동안 8차에 이어진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딸 가연(7·가명)이와 함께 요양원에서 지냈다.

가족의 도움을 받을수도 없었다. 부모님은 2012년 누전으로 집이 완전히 불탄 뒤 지금까지도 무허가 컨테이너에서 지내고 있다.

이 씨가 암 수술을 받은 지 한 달 만에 아버지는 큰 교통사고를 냈다. 운전을 하다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가드레일을 들이박은 것이다. 베트남전 파병을 다녀온 아버지는 고엽제 후유증으로 평생 고혈압약과 두통약을 달고 살았다.

사회생활이 쉽지 않았던 아버지를 대신해 평생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생계를 책임져왔던 어머니는 벌써 수 년전 대장암에 걸려 몸져누웠다. 이 씨는 "암으로 힘들어하는 어머니에게 나까지 짐이 될 수 없어 도저히 부모님 댁에 머무를 수가 없었다"고 했다.

사실 이 씨는 학창시절에도 몸살로 일주일에 한두번은 학교를 결석할 만큼 선천적인 허약체질이다. 그런 이 씨가 감당하기에 항암치료는 너무 독했다. 3주에 한번 6~7시간에 걸쳐 항암 주사를 맞으면 장기가 녹아내리는 듯한 고통이 며칠간 이어졌다.

도저히 버틸 수 없어 치료를 중단하고 싶었지만 이미 암세포는 유방 조직 전체에 퍼진 상태. 세포분열지수가 워낙 높아 전이가 불보듯 뻔해 항암치료를 멈출수도 없었다.

◆딸 키우려면 돈 벌어야 하는데 야속하기만 한 몸

이 씨는 전 남편의 다정한 모습에 반해 예쁜 딸을 갖게 됐고 2012년 결혼했다. 집에 큰 불이 난 직후라 위안이 되어주는 그가 좋았다.

하지만 결혼 후 남편은 무섭게 돌변했다. 신용불량자였던 남편은 이 씨의 이름으로 대출을 받거나 각종 계약을 하고 다녔고, 조금만 비위에 거슬리면 무차별 폭행을 일삼았다. 말리는 이 씨의 어머니에게도 발길질과 손찌검이 이어졌다. 2년간의 진흙탕 같았던 소송이 끝나고 겨우 이혼했지만 그에게는 전 남편이 벌려놓은 대출 빚만 산더미였다.

이 씨는 지난 2월까지 아픈 몸을 이끌고 미용실, 공부방 보조, 카페 등 단기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그마저도 툭하면 토하고 쓰러지기 일쑤라 한 달을 넘겨 일한 곳이 없다. 의사는 재발위험이 크니 2년간은 일하지 말라고 했지만 당장 생계를 위해서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나마 최근 최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문을 두드렸던 행정복지센터에서 친언니같이 살뜰히 챙겨주는 최미령 주무관을 만나 주거 문제는 해결할 수 있었다.

문제는 앞으로다. 이 씨는 "가연이는 요양원에 살 때도 불평불만 하나 없이 할아버지 할머니 사랑을 독차지할 정도로 밝은 아이"라며 "가연이를 위해서라도 이젠 정말 엄마 노릇 하며 제대로 하며 살고싶다"고 눈물을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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